가난한 여성도 배워야 한다 - 정종명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5/14
일제 경찰의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에 이름을 올린 정종명. 출처-공훈전자사료관
조선여자고학생들의 참스승이자 큰언니, 정종명(鄭鍾鳴, 1896 ~ ?)
   
배운 여자는 골칫덩이?!
   
‘찌질’의 역사는 장구하다. 부끄럽지만, 유사 이래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힘센 ‘남자’들이 보여준 구차한 사례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남성들은 ‘정치’를 지휘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종교’를 발판삼아 여성들을 억압했다.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확산되고, ‘교양’과 ‘지식’을 습득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런 부당한 처사는 점차 줄어들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20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교육’의 기회는 남성들에게만 주어졌다. 여성전문학교가 하나 둘 생겨났지만 극소수였을 뿐, ‘배운 여자’는 세상의 ‘눈요깃거리’ 혹은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20세기 초반 조선의 여성들은 여전히 폐색된 유교 인습과 가부장 질서에 가로 눌렸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도 전근대적 습속의 반복을 강요받을 뿐, 새로운 ‘앎’을 접할 기회는 얻을 수 없었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만 해도 호사였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더욱이 가난한 여성들에게 학교는 아주 머~언 세계였다.

빈가(貧家)의 젊은 여성들은 다른 가족들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해야 하는 ‘딸’이었고, 남자 형제를 위해 자신의 꿈을 누구보다 빨리 포기해야 하는 ‘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열정을 버리지 않은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여자고학생(女子苦學生)’이라 부른다. 이들은 가정을 돌봐야 하고 거친 노동에 내몰렸지만, 연필을 사기 위해 한 푼을 아꼈으며, 책을 사기 위해 밥을 굶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자고학생상조회원들(<조선일보>,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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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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