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낮의 꿈 - 심진구와 박인환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6/27
 
한여름 낮의 꿈 - 노동자 심진구와 검사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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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를 풍미한 ‘주사파’의 원조 김영환의 이름은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잠수정 타고 북한까지 다녀왔던 이 열혈 주사파는 북한의 실체를 목도하고 생각을 바꿔 지금은 북한 정권에 열렬히 반대하는 입장이 됐다. 그런데 ‘주사파’로 부를 수는 없지만 김영환보다 주체사상을 먼저 접했고 김영환에게 영향을 준 노동자가 있었다. 이름은 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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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가난한 노동자였던 그는 사회 변혁에 관심을 가졌고 힘겨운 노동 와중에도 사회과학 학습에 힘썼다. 그의 시선과 발길은 헤겔, 맑스 레닌을 거쳐 주체사상까지 이어졌고 북한 방송을 들으며 주체사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몇몇과 모임을 가지던 그는 노동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선진노동자의 임무〉라는 문건을 썼는데 당시 같이 자취하던 김영환이 이 문건을 들고 그의 문제적 저작 <강철서신>에 낼름 인용해 버렸다. (김영환은 허락을 받았다고 우겼지만 심진구는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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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저작권(?)이 아니었다. 강철서신으로 운동권 전반에 파문을 일으킨 김영환이 체포됐다. 당시 ‘강철서신’은 운동권 뿐 아니라 경찰과 안기부 등 수사기관들도 뒤집어 놓았다. 주체사상을 운운하고 간첩 박헌영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쩌고 저쩌고라니 이건 분명히 북한과 선을 닿은 것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의 눈에 켠 불빛에 김영환이 포착됐고 김영환은 당연히 모진 고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 심진구였다.

 
영화 <남영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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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진구는 1986년 11월 결혼했는데 그 한 달뒤인 12월 안기부원들에게 붙잡혀 저 끔찍한 ‘남산’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장장 35일 동안 짐승에 의한, 짐승보다 더한, 스스로 짐승이 되는 고문을 받는다. 고문이 극심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노동자 ‘따위’ 심진구가 이런 문건을 썼을 리 없다는 그들의 지레짐작이었다. 그 배후에 있을 북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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