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 더 이상 '국뽕' 천만 영화는 안 나오길

김다움
김다움 · 게을러요
2024/01/01
<서울의 봄>은 정치적이라기보단, 통치적이다. 도발(挑發)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시킨다기보단, 포섭하며 화만 돋운다. '보수'적이고 완만하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MZ 세대'인 나로선 <서울의 봄>이 '좌빨 영화'라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등장인물 이름부터 애국과 '국뽕'이 넘친다. '전두광'에 '이태신'이라니. '이태신'과 '이순신' 동상을 번갈아 보여줄 땐 '항마력'이 부족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장면은 꽤 많았고,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군인들의 '애국' 투쟁 과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파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보수(保守)는 '전두광'보단 '이태신'에 열광한다. 당장 '북'이 내려올지 모르는 데 한눈을 팔면 안 되지 않는가?

문제 제기를 비웃듯 흥행이 이어졌다. 무려 천만 영화다. 혹자는 한국의 천만 영화 목록을 보고 "믿고 거르면 되겠다"고 말한다. 거만한 태도가 맘에 들지 않지만, 주장엔 동의한다. 보통 천만 영화는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한다. 그리고 거기서 멈춘다. '돈값'을 한다. 푯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인데, 딱 그 정도다. 일견 자본주의적 교환이다. 문제는 경쟁이다. 흥행작은 수익을 독점적으로 챙긴다. 극소수의 흥행 영화가 상영관을 쓸어 담으니 공정하지 않다. 정의를 위해 보이콧해야 한다. 더군다나 나는 이기적인('이성적인') 인간이라 가성비 높은 소비를 원한다. 1+1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많이 받고 싶다. 영화표 가격보다 수백 배 높은 가치를 원한다. 실제로 그런 영화는 꽤 있다. 천만 영화보다 훨씬 많다. 당장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괴물>도 훌륭했다. 물론 <서울의 봄>은 좋은 영화다. 너무 많이 팔렸을 뿐이다.

'대중성'과 오락성은 다르다. 전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고, 추구하면 할수록 대중과 멀어진다. 대중은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한국 대중 영화의 키워드 '신파'는 대중에게 미움받는다. 평론가 취향도 환상이다. 나는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철학과 언론을 전공하는데, 그다지 전문적이진 않네요.
47
팔로워 49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