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페미니즘 교실]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오혜민
오혜민 인증된 계정 · 여성학자, 한예종의 페미니스트 선생
2023/01/25

페미니즘 교실의 태연한 연기자 


나는 국립 예술 대학에서 페미니즘 필수 교과목을 4년째 가르치고 있다. 이 교과목은 2016년 부터 활발하게 일어난 #OO계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 공론화의 결과물이었다. 사후 대책을 내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부터 예술계 문화 전반을 고민하며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이 수업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유로 덮어왔던 문제를 재고찰하고 공간을 결국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을 떠올리며, 예술과 예술가를 지켜갈 생각을 확장하는 작은 연습의 장을 목표 로 했다.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매주 두 시간씩 열다섯 주, 서른 시간을 채워가는 필수 수업, 너무나 도전적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꼭 필요한 이 교실의 시작마다 나는 수업 취지를 반복하여 설명한 다. 그리고 선포한다. 불평등과 차별에 관한 아주 오랜 노력인 페미니즘이 당신을 조금 더 단단 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그리고 페미니즘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그래서 더 좁았던 세계에 갇혀있던 당신의 생각을 널리 확장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 수업이 당 신과 당신의 작업을 지지할 주변 사람과 환경을 두텁게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바 람과 함께 수업이 시작된다. 나는 이 시도가 언젠가 삶의 한 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리라 반복해 서 믿으며, 열다섯 번의 시도를 빼곡하게 채워 넣는다.
매 수업 시작 전 보여주는 약속문, 개강 첫 날 반 말 사용 취지를 설명하고 불편함을 표현하는 신호를 함께 정한다.
거창한 목표를 제시하며 시작된 교실은 놀랍게도 종종 성공적이지만, 당연히 자주 망한다. 정 답이 없는 교실이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발언 전에는 오답이 아닐까 신중히 고민해보자는 교실의 약속도, 평등하면서 또 존중하는 환경을 연습하자는 취지로 한 학기 동안 교수자인 나를 포함하여 서로서로 반말을 사용하자는 제안도 교실의 안전망이 되지 못할 때가 있다. 수업은 종 종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반말 존댓말을 가리지 않는 막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 게 여러 학기를 보내고 나니 어지간한 일에 태연한 척하는 연기가 많이 늘었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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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입장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연구자, 존중의 공간을 만드는 선생을 목표로 반 페미니즘 백래시, 여성 청년, 교차성, 이주, 페다고지를 탐색한다. 도서 <벨 훅스 같이 읽기>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 <Unbekannte Vielf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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