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 시대 징병, 자원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3년 전에 nhk에서 취재를 왔었다. 자원 입대였다는 쪽으로 인터뷰를 끌고가자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그들을 내보냈다. 그 후 써두신 글 몇 장 중 일부.....서류상 강제 징병이 아니었으나 실은 강제 징병이었던 까닭이 씌어있다.
위안부도 일본인에 의해 강제로 끌려 간 증거가 없으니 일본국 책임은 없다?....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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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에서 조선총독부는 육군 특별 지원병 제도를 신설하여 조선 청년을 반강제적으로 지원케 하였다.
그 내용인즉, 유력 인사의 자제나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을 감언으로 꾀고 그 부모를 꾀어서 지원토록 했는데, 지서장(현재의 파출소장) 이 자기 실적을 올리려고 앞장서서 조석으로 집을 방문하여 자원을 권유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본군에 지원한 사람들은 형식적인 시험을 거친 후, 조선총독부 관보에 합격자 명단을 대문짝만하게 발표하고 축하 행렬이 이루어졌다.
그 후부터는 경찰서 병사계 형사가 집을 방문하여 대문 앞에 <명예의 집>이라는 표찰을 붙여 특별한 집으로 지정을 해주었다.
그 후에 지원병 훈련소에 입소하여 일본군 훈련을 6개월간 받은 다음 전장으로 보내졌다.
훈련은 힘들었다. 훈련에 고통을 받은 지원병들 중 훈련소 앞을 지나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람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밥은 보리밥 한 공기라서 식욕이 왕성한 청년시절이라 배고픔을 못 이겨 밤이면 여러 사람의 돈을 모아 한 사람이 산을 넘어 민가에 가서 빵을 사오는데 사러간 사람은 공짜로 먹었다.
사온 빵은 담요를 둘러쓰고 감시원의 눈을 피해 먹었다. 빵을 파는 민간인은 밤이 되면 산능선까지 와서 팔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