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한 채 찾기 이야기와 그리고 물음
2021/10/01
아래 내용은 이혜미님의 「착취도시 서울」 이란 책을 읽고 나서 써봤던 '나의 서울 살이 이야기' 입니다.
===
1. 2007년 2월, 강남구 역삼동
===
1. 2007년 2월, 강남구 역삼동
내 첫 서울 집은 창문없는 고시원 방이었다.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된 나는 '학사'의 문을 두드렸다. 학사는 일종의 하숙집이였는데 홀로 서울 강남의 재수학원 앞에 떨어트려놓기 싫은 부모님들이 집안일비용 일체(청소, 빨래, 식사)와 사감비를 지불하고 고시원 같은 곳에 자녀를 맡기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사감이 생활관리를 맡고 세끼 식사와 빨래, 청소등을 맡아서 해주기에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이었음에도(화장실도 공동이었다) 당시 1달에 95만원을 받았다. 창문 있는 방은 105만원, 창문있고 화장실까지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방은 120만원. 서울에서 가장 비쌌던 강남역 앞 삼겹살이 1인분에 9천원 했던 시절이니 상당히 비싼 돈이었다. 옷만 들고가면 의식주가 해결되고, 그 비싼 강남역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곤 해도, 서울에 살기위해선 대충 얼마쯤의 돈이 필요하다는걸 처음 느꼈던 시기였다.
대구에서 나는 늘 아파트에서 지냈다. 본가는 대구에서 가장 부촌이라는 수성구에 있었고 개발된지 10여년 정도가 지난 신흥택지지구의 5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집에서 제일 작은 여동생 방넓이의 반밖에 안되는 곳에서 1년을 지내게 된 나는 '똘똘한 한 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2. 2008년 2월, 성북구 정릉3동
대학에 합격했다. 두 곳의 대학에 합격했는데, 한 곳은 상대적으로 서열이 높았지만 어문계열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그저그랬지만 상경계열이었다. 대학 서열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와 전공이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싸움이 대학 최종 결정 시한 5분 전까지 이어졌는데, 마지막 물음은 '기숙사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어디냐?' 였다. 서열 높던 대학은 기숙사 건립 계획만 있었던데다 추가합격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 반면 상경계열 학교는 장학생 입학이어서 기숙사 입사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