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성, 그리고 본질의 형이상학 - 주디스 버틀러 <젠더트러블>
버틀러는 정체성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젠더 정체성’ 논의인데 왜냐하면 ‘사람’이란 ‘젠더의 인식 가능성(gender intelligibility)'이라는 합의된 기준에 따라 젠더가 될 때에만 비로소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철학적 설명에서 개인의 정체성의 구성에 대한 질문은 개인의 어떤 내적 자질이 자기 동일성이나 연속성을 확립하는지를 거의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정체성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라는 개념을 통해 확보되는 한 ’비일관적‘이고 ’불연속적‘인 젠더 존재의 문화적 등장은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심을 품게 만들며, 이런 젠더 존재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문화적 인식 가능성이 있는 젠더 규범을 따르는 데 실패한 존재이다.
법은 생물학적 섹스, 젠더, 성 습관, 욕망들의 ‘표현물’이나 ‘결과물’의 인식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구분한다. 성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생각은 이러한 일관된 젠더 규범의 모태를 통해, 일관된 정체성을 낳는 규제적 관행을 통해 생산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젠더 정체성은 이러한 규범에 따르지 못하고 이런 정체성의 지속과 증식은 인식 가능성의 영역의 한계와 규제적 목적을 드러냄으로써 젠더 무질서라는 경쟁적이고 전복적인 모태를 펼칠 비판적 기회들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인식 가능성의 모태’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일한가? 무엇으로 구성된 것인가? 만약 정체성이 담론적 관행의 결과라면 젠더 정체성은 강제적 이성애로 규명될 규제적 관행들 사이의 어떤 관계로 구성될 것인가?
프랑스 페미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이론 영역 안에는 섹스 정체성 개념을 생산한 것으로 매우 다른 권력체계를 간주하는 다양한 입장들 간의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이리가레는 오직 남성적 성만이 존재하며 그들은 ‘타자’의 재생산 속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킨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