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보수의 현문우답 - 나는 시민인가

칭징저
칭징저 · 서평가, 책 읽는 사람
2023/11/14
송호근, <나는 시민인가>
빛바랜 보수의 현문우답 - 나는 시민인가

저자 송호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꼽는 이른바 ‘합리적 보수’의 대표 인사다. 실제로 그는 보수적이지만, 사회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진보와 보수의 관점과 이론적 배경을 두루 검토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대부분 논저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현재 한국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이념투쟁이 벌어지는 중'이라는 기본인식부터 동의하지 못하겠다. 마르크스주의는 고사하고 케인스주의적 입장만 취해도 빨갱이로 몰리는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이념투쟁씩이나 벌일 진보세력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에 대한 그의 관점도 이상하다. 

이 책에도 나오는 부분인데,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우수한 정치체제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체제의 핵심 주체인 노동조합은 일자리 창출을 막는 암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가-자본-노조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여 생산성, 일자리, 복지에서 최선의 성과를 낸 것이 사회민주주의 아니었던가? 극심한 노사분쟁을 민주주의 정치 틀 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정당을 만들었고, 그들과 자본의 협력을 국가가 잘 조정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출발점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여기에 2003년경 황우석을 끝까지 옹호하며, 그의 연구 진실성을 검증하려 했던 언론인들을 천둥벌거숭이 취급했던 흑역사는 덤이다. 송호근의 글을 싣는 중앙일보는 그를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실용적 해법을 제시하는 균형 잡힌 학자’쯤으로 소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그냥 엘리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보수적인 방향으로 한참 기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저자의 필력 때문이다. 그의 글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엘리트주의와 잘난 체는 역겹지만, 글을 수놓는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문장미에는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다. 역사와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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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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