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론과 민생단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2/27
민생단과 수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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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2월 15일 만주 연변의 도시 용정에서 특이한 이름의 단체 하나가 결성됐다. 민생단(民生團). 굶주린 인민의 민생고(民生苦)를 해결하려는 구휼 단체가 아니었다. 박석윤 등 이 단체의 주도하던 이들은 간도 총영사관과 조선총독부가 자신들의 뒷배에 있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간도 재주선인(在住鮮人)의 자각을 촉진하고 자위상(自衛上) 서로 단결하고 산업인으로서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단체를 조직하자.”고 주장한다.(우리역사넷) 즉 일본의 만주 점령에 발맞춰 연변,간도 지역에 친일적인 조선인 특별 지역을 만들어 보자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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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일본 군부는 조선인들의 자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만주 지역 조선인들의 지지도 얻지 못한 민생단은 창립 후 몇 달도 안돼 문을 닫고 만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 반짝했던 이 민생단은 향후 몇 년 동안 수없는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이름으로 남는다.  친일 반공을 표방했던 이 단체의 조직원이 조선인 독립운동진영에 침투한 사례가 발각된 후 중국 공산당 동만특위의 과잉 대응이 전개됐고, 중국인들의 조선인들에 대한 불신과  조선인 독립운동 진영의 내부 문제가 덧대 불거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민생단 ‘사냥’으로 전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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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블로그
어느 집단이든, 어느 조직이든 가장 두려운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 일본군이 아무리 강해도 목숨 걸고 싸우면 그뿐이지만 함께 싸우던 동료가 별안간 뒤통수를 때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잔인함을 불렀고, 편집증을 낳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당 간부의 완장을 찬 이가 별 근거도 없이 누군가에게 ‘민생단’의 손가락총을 날리면 그 주변 수십 명이 몰살당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민생단 색출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이가 삽시간에 민생단으로 몰려 죽기도 했다.  어디 출신이라고 죽기도 했고 심지어 밥 먹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으로 몰려 황천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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