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의 유대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4/01/10


  •  한성안 | 경제학자

'사유하지 않은' 절대악 만큼 '사유하는 절대악'도 해롭다
 
나치 독일은 1940년에서 1945년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만들어 유대인과 폴란드 공산주의자 110만여 명을 독가스로 살해했다. 소련군이 진주했을 당시 7톤의 머리털이 한 창고에서 발견되었는데, 나치는 그걸로 담요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용소 의사였던 요제프 멩겔레는 어린이 수감자를 영하 20도 이하의 추위 속에 맨발로 내몰아 동상에 걸리게 한다든가 남녀 성기를 절단해 보는 등 각종 생체실험을 했다. 잘 아는 아우슈비츠의 잔혹사다.
 

아우슈비츠의 참상

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잡지 <뉴요커>의 특별 취재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 이런 학살의 책임자 루돌프 아이히만이 재판받는 과정을 참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63년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 한길사)을 출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2006, 한길사)




악의 펑범성
아렌트는 7개월간 진행된 예루살렘의 법정 심리가 끝나고 교수대로 향하는 아이히만을 관찰했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는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그는 그에게 성서를 읽어 주겠다고 제안한 개신교 목사 윌리엄 헐 목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두 시간밖에 더 살 수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두고 기괴하게도, 의기양양하게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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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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