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4/07/30
  • 이레네 레뇨 외 


우주와 대중을 정복하기 위한 신화 ‘평범한 영웅’

<무한의 신비>, 1843 - 장자크 그랑빌

1955년, 미국 <ABC> 채널에서 ‘맨 인 스페이스(Man in Space)’가 방영됐다. 4,200만 명이 디즈니 스튜디오가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했고, 1956년 재방송 이후에는 미국 국민의 절반이 이를 시청했다. 인류가 달에 갈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 비율은 1949년 15%에서 방송 이후 38%로 증가했다.(1) 쥘 베른의 소설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년)까지, 공상과학은 우주 정복이 인류의 꿈인 것처럼 다뤘다. 자연적이고 보편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욕망을 달성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주 정복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주탐사로 얻은 과학적 성과를 내세우고, 위성에 찍힌 지구 사진을 이용해 행성의식(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역주)을 강조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를 영웅으로 조명하는 것도 한몫했다.

우주비행사는 단순히 우주로 탐사를 떠나는 역할뿐 아니라 자국의 가치를 구현하는 역할도 한다. 1961년 당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뽑은 이유는 그가 소박한 시골 출신이며 소련이 추구하는 남성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미국도 1959년부터 미국 국민상을 대표하는 우주비행사 7명을 선출했다. 훤칠한 외모, 아름다운 아내, 충성심, 애국심, 백인, 정서적 안정성,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정신을 갖춘, 일명 ‘머큐리 세븐’이었다. 노련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들은 국가를 위해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술적 능력, 의무, 용기의 상징이 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212
팔로워 385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