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34] 시각장애인이 자연을 보듯이

조은미
조은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사람. 한강조합 공동대표
2023/11/02
(샛강숲 무장애나눔길을 즐기는 사람들 c.정지환)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대성당>에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TV를 보다가 대성당을 그리는 남자가 나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아내가 오랫동안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로 교류하던 시각장애인이 어느 날 그들 부부의 집에 놀러 옵니다. 남자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눈이 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기에 그 방문이 달갑지 않습니다. 어색한 방문의 날 저녁 그는 같이 앉아 TV를 보게 되는데 마침 대성당을 소개하는 프로가 나옵니다. 그러자 시각장애인은 남자더러 같이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합니다. 

남자는 내키지도 않고 대성당이나 그리기에 관심도 재주도 없지만 장애인이 부탁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리기 시작합니다. 남자가 그리는 손 위에 장애인이 손을 얹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한참 그리다가 장애인은 남자에게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 남자는 나중에 눈을 뜨고 보라고 해도 한동안 눈을 감고 그림을 봅니다. 그는 집안에 있었지만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색다른 감각을 느낍니다. 그가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It’s really something.)”이라고 감탄하며 소설이 끝나죠.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자연을 만나는 시각장애인들 c.장애와숲)
지난 10월에 여의샛강생태공원에 미국인 친구 앤이 왔습니다. 저의 대학 은사님의 여동생인데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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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일합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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