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후가 오늘을 본다면
2024/03/19
김윤후가 오늘을 본다면 - 90%의 현실과 10%의 상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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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 또 한 번의 태풍이 몰아쳤다. 몽골군의 다섯 번째 침공이 시작됐다는 구구전승이었다. 충주 방호별감 김윤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윤후가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를 쏘아 죽인 것이 20년도 더 전이었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전쟁은 빤질나게 벌어졌고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갔다. 서북면 방어선은 이미 폐허가 된지 오래였고, 몽골군은 물 흐르듯 남하했다. 온 고려가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단 하나, 강화도를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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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1차 침입이 끝난 뒤 최씨 정권은 황제를 끼고 강화도에 들어앉았다. 손바닥만한 섬에 궁궐을 짓고 대궐같은 기와집들을 짓고 도방 이하 고려 최정예병들을 거느리고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항구에서 읍내까지 처마 아래만 걸으면 비를 안맞는다 할 정도로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몽골군과 싸우는 한켠으로 아금바금 지은 곡식들을 악착같이 걷어가는 관리들 덕에 강화도는 대개 풍성했다. 가끔 관료들 봉급을 못 주는 위기 상황은 있어도 최씨 가문 잔치가 끊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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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과 싸우느라 이력이 난 김윤후는 수시로 의문에 빠졌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인가. 우리 황제가 저쪽 칸에게 항복하지 않았으니 다행은 다행인 것 같은데 재주는 뭐가 넘고 돈은 누가 번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죽어가는 것을 강화도의 손바닥만한 땅에서 발 뻗고 사는 권력자들은 과연 알고는 있을까. 느끼고는 있을까 싶었다. 특히 최씨 정권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지금의 집권자 최항도 그렇고 그 아비 최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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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사직을 지키고 황제를 보위한다는 것은 허울일 뿐, 최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권력이었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별 짓을 다 했다. 특히 정치적 기반이 본디 별로 없던 최항은 최항은 정도가 심했다. 젊어서 자신이 횡포를 부릴 때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하여 주의케 했던 이들을 모두 죽이거나 패가망신시켜 버렸다. 이...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매번 잘 읽고 갑니다. 박용진의 3번에 걸친 공천탈락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오명으로 남을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