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한국의 밥상 (4)-위대한 무급 돌봄 노동자들

우석영(동류실주인)
우석영(동류실주인) 인증된 계정 · 철학자. 비평가. 작가.
2023/09/30

그러니까 우주의 한 중심이던 그 방에서 살던 시절, 나는 온통 돌봄에 둘러싸여 있었음이 틀림 없다. 평생 잊히지 않는 음식을 조리해준 할머니의 돌봄, 쇠죽을 끓이며 구들방을 데워준 할아버지의 돌봄만은 아니다. 장작과 아궁이와 솥이 돌봐주고 있었고, 소반과 상에 올라온 음식물(먹을거리, 땟거리, 식량, 공양물供養物, 食物, хоол, 食べ物, आहारः, , طعام, Food, Essen, Nourriture, Alimento) 자체가 하나의 고결한 희생물로서, 하나의 선물이 되어 돌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작과 희생물은 어디에서 온 물질이었던가. 마을이 아니라 산과 대지 전체가, 지구 전체가 한 어린이를 돌봐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그 희생물과 그 희생물을 만지던 인간의 손에 가장 먼저 가 닿아야 한다. 한겨울에 할머니는 부엌에서 찬바람 맞으며, 때로는 콧물을 훔치며, 얼고 부르튼 당신의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 동치미며 김자반 같은 것들을 방으로, 상으로 올려놓곤 하셨다. 할머니의 이런 상차림은, 늘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로 ‘올리는’ 행동이었다. 다시 말해, 그 상은 찬 아랫자리에서 온기 어린 윗자리로 언제나 ‘올라왔다.’ 상하와 냉온의 질서가 부엌과 방 사이에 있었다. 

심지어 할머니는 방에서 겸상할 때도 당신의 밥그릇을 상 아래에 놓거나, 몸을 상에서 약간 떨어뜨려 놓고는 마치 하인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와 자세로(내가 어렸을 때는 ‘머슴’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던 일꾼들이, 공식적으로 그런 신분은 없었지만 실제의 생활세계에서는 머슴 역할을 수행하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식사하곤 하셨는데, 어린 나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 불가의 행동이었다. 실은 지금까지도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왜 할머니는 우리와는 다른 식으로 식사하셨던 걸까? 추정일 뿐이지만, 할머니의 행태는 아마도 내리물림된 것이었으리라. 

어린 시절 내가 목격했던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지구철학. 탈성장 생태전환. 포스트휴먼 문학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행동사전>(공저)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 해결된다>(공저) <숲의 즐거움> <동물 미술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등
9
팔로워 17
팔로잉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