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군대 이야기 (4) x군단사령부
1975년 1월 12일 (일) 부산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xxx역에서 내려, 역에서 멀지 않은 xxx보충대로 더블 백을 둘러멘 채 걸어서 인솔되었다. xxx보충대는 전국 각지에서 신병교육대를 마치거나 후반기 교육(기초 군사 훈련이 끝난 뒤, 특기병에 한하여 특기에 관련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과 훈련)을 마친 사병들 중 xx도 북부에 위치한 부대에 배치될 사병들이 이삼일 거처 가는 부대였기 때문에 부대에 대한 애착이나 같은 내무반원들 사이에 전우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기간병들이 통제를 하기는 했지만 군기도 다소 문란했다. 가끔씩 수용 병사들 간에 고함이 오가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식사와 점호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대부분 정신교육을 받는 시간이었다. 한 교육 실에 이백여 명의 교육생을 한꺼번에 수용하고 강의를 진행하였다. 더욱이 교육실 문밖에서 작업화를 벗고 입실하면. 좌우전후로 서로 어깨가 부딪히고 몸뚱이가 서로 촘촘하게 밀착된 채 방바닥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는데, 실제 강의가 시작되면 너 나 없이 머리를 꾸벅이며 졸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강의가 끝난 후 발생되었다. 강의가 끝나자 우르르 일어나 좁은 출입문을 나서며 즐비하게 놓인 통일화 중 자신의 신발을 찾아 신어야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일찍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앉아있었다. 앞서 나가는 이들이 자기 신발을 찾아서 신으면 결국 내 신발 한 켤레는 남을 테니 괜히 앞서 나가서 고생하며 신발을 찾을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오 육분이 지나고 다소 한가해졌을 때 일어나 출입문을 나섰는데, 아직 몇 명의 펴 교육생들이 신발 끈을 매고 있었다. 그런데 남아있어야 할 내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5~6미터 앞에 신발 한 짝이 엎어진 채 있는 것이 보여서 맨발로 달려가 집어 들었다. 왼쪽 신발 한 짝이었다. 신어보니 조금 큰 듯한데 그런대로 신을만하였다. 오른쪽 신발 한 짝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아직도 신발 끈을 매고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