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에 세워진 탑,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2/03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식이 될 것이다 -제주대정삼의사비 뒷면에 새겨진 첫 문장.
▲ 제주대정삼의사비 대정읍 안성리에 선 제주대정삼의사비 사진. ⓒ 김성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한 길가에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정면에 '제주대정삼의사비'라 새겨진 이 비석은 세워진 날로부터 60갑자 한 바퀴를 돌았다. 비석을 세운 이는 1982년 사망한 이순옥씨, 평생을 억울하게 세상 떠난 오라비를 애달파하다 마침내 그 뜻을 새겨 기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순옥의 한 평생은 얼마나 한 많은 것이었나. 사람 좋고 인물 좋던 오빠는 대역죄인이 되어 서울로 압송돼 장대에 목이 달렸다. 순옥의 나이 열다섯 때 일이었다. 대역죄인의 동생이란 고통보다 나라가 사라지는 것이 한 발 더 빨랐다. 제 나라 백성도 지키지 못한 조선은 일본에게 침탈당해 주권을 잃었다.

제 오빠가 누구인지를 글로 적은 순옥이 그 글을 가슴에 품고 서울로 올라간 건 조선이 무너지고 몇 년이 흐른 뒤였다. 총독부 문 앞에서 사흘을 노숙하며 출판을 청원한 소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글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걸인처럼 생활하며 나쓰메 소세키 등 유명한 문인들을 찾아 출판을 청했다. 조선이 거부한 대역죄인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야월 한라산>이란 전기로 태어났다. 갓 스물을 넘긴 순옥은 그제야 오빠가 남긴 말대로 기독교도가 됐다.

제 오빠를 죽인 종교에 귀의한 그녀는 죽은 제 오빠가 신을 팔아 신을 모독하는 자들을 없애려고 신이 보낸 사자라 믿었다. 사형을 앞두고 한양으로 압송되던 순옥의 오빠가 그녀에게 신앙을 권한 것을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개중 가장 설득력이 높은 이야기는 제가 처단한 천주교 일파들이 제 동생을 해할까 우려해 먼저 종교에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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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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