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지 않는 옷들과의 전쟁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2/07


운동할 때를 제외하면 외출할 일이 별로 많지 않은 가택 생활자인지라 옷에 대해 대단히 무심한 편이었는데, 근래에 들어 등산 용품을 자꾸 사들이다 보니 곁다리로 마음에 드는 일상복도 종종 충동구매하게 되었다. 물론 중고로. 나의 어리석음을 변호하고자 부연하자면, 충동 구매와 중고 제품은 한 세트로 다니는 경향이 강하다. 대부분의 상품이 마지막 재고 하나라서 언제 팔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 하나뿐인 할인 상품.’ 이걸 무시하고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처럼 사고 팔기를 예사로 하는 사람이라면 여차하면 팔면 된다는 생각에 더욱 심한 충동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옷장을 비롯한 수납 공간이 거의 꽉 차고 말았다. 물론 옷이라는 게 억지로 꾹꾹 눌러 넣으면 부피가 좀 줄어들어 한계치를 좀 넘길 수도 있으므로 당장 옷을 땅바닥에 던져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가 오진 않았지만, 며칠 전에는 그런 억지 수납을 견디지 못한 침대 서랍이 분해되고 말았다. 나 원 참, 뭐 이런 주인처럼 나약한 서랍이 있나. 하지만 불평해봤자 수납 공간이 살아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투덜대면서 서랍을 재조립하고 보강한 뒤에 의류 정리에 나서게 되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중고 의류를 종종 샀다지만 이렇게까지 공간이 부족할 수 있나? 항상 돈이 없다고 훌쩍거리면서 수납 공간은 이다지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옷장을 비롯해서 각종 수납 공간을 살펴보니 그 이유는 제법 간단히 드러났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왜 또 많을까? 이 이유는 가풍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가족 중에서 세 명이 재봉틀을 돌리든 바느질을 하든 당연하다는 듯이 옷을 고쳐 입는 사람들이라 옷을 도통 버리질 않는데, 그러면서 모두가 할인할 때 옷을 안 사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직접 산 옷 말고도 부모님이 사온옷(주로 3종 세트), 가족에게 물려받은 옷을 대충 보존하고 있었으니 10년 20년은 된 옷이 옷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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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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