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이력서도 있습디다
2023/10/13
"중간에 그만두면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해. 끝까지 할 자신 있어?" 한 달 넘게 발레 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르던 나에게 엄마가 던진 질문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물었다. 공주 같은 핑크색 발레 옷이 입고 싶었을 뿐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던지 엄마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발레 선생님이 어깨를 눌러 다리를 찢을 때 허벅지 뼈가 부러질뻔했다, 한 시간 동안 팔 들고 벌서는 것 같다는 등 친구들의 고통 간증이 떠올라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면 학원은 안 가도 발레 옷만 사주면 안 되느냐는 응석도 엄마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는 300만 원 은행빚을 안고 옥탑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 당신 얼굴에 바를 스킨과 로션 살 돈까지 아꼈다. 이래야 한 달 생활을 꾸릴 수 있던 엄마의 소비 기준은 투자대비 성과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결국 그렇게 입고 싶던 날개 같은 튀튀 스커트와 발목을 리본으로 감싼 토슈즈는 목적 없는 욕망이라는 이유로 꿀꺽 아쉬운 눈물과 함께 속으로 삼켜야 했다.
과도하게 억눌린 욕망은 언젠가 폭발한다고 했던가. 살고 싶은 대로 일상을 구상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 성인이 되고부터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꼭꼭 묻어둔 청개구리 심보가 마음속에서 족쇄를 풀고 나온 건지 오지게도 무엇이든 꾸준히 그만뒀다.
먼저 취미. 근육 굴곡까지 보이게 딱 붙는 하얀 타이즈에 토슈즈를 신고 커다란 거울 앞에 선 나를 보며 행복했던 성인 발레교실 3개월, 얼음 위를 나비처럼 날아디는 김연아 선수처럼 되고 싶었지만 빙판 위에 올린 지렁이처럼 넘어져 힘없이 꿀렁대다 끝난 6개월, 지구의 70%를 넘게 차지한다는 바닷속 세계를 유영하고 싶어 시작한 스킨스쿠버 다이빙 5개월, 서커스 단원처럼 중력을 거슬러 빙글빙글 우아하게 도는 폴댄서를 꿈꿨던 한 달, 거미처럼 바위를 맨손으로 올라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등록한 실내 암벽등반 3주... 간만 봤던 취미생활이 기억도 못 할 정도로 한 트럭이다.
아르...
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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