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삽혈동맹 사례와 영조의 PTSD

삼한일통-김경민
삼한일통-김경민 · 청년 문화기획자
2023/11/22
삽혈의식이란? 삽혈(歃血)
동물의 피를 함께 나누어 공유하는 의식 
국내 문헌으로 찾아보면

가을 8월에 왕이 칙사(勑使) 유인원(劉仁願), 웅진도독(熊津都督) 부여융과 더불어 웅진 취리산(就利山)註 001에서 맹세하였다. 일찍이 백제는 부여장(扶餘璋) 때부터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자주 우리 영토를 침범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흰 말을 잡아 맹세하였다. 먼저 하늘과 땅의 신 및 강과 계곡의 신에게 제사지낸 뒤 그 피를 마셨다
삼국사기  | 문무왕 5년문무왕과 부여융 | 


임신 왕이 천덕전(天德殿)에 거둥하여 백관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내가 신라(新羅)와 피를 입술에 바르며 동맹을 맺은 것은 두 나라가 길이 우호(友好)를 유지하고 각자의 사직(社稷)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신라왕이 굳이 신하로 있겠다고 요청하고 그대들도 그것이 옳다고 하니, 나의 마음이 매우 부끄러우나 여러 사람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렵다.”라고 하고, 이어 신라왕이 뜰에서 알현(謁見)하는 예를 받으니 여러 신하가 하례하여 함성이 궁궐[宮掖]을 진동하였다. 이에 김부(金傅)를 정승(政丞)으로 임명하여 지위를 태자보다 위에 두고, 해마다 녹봉(祿俸) 1,000석을 주었으며 신란궁(神鸞宮)을 지어 하사하였다. 그의 시종자도 〈관리로〉 수록(收錄)하여 토지와 녹봉을 넉넉히 하사하였다. 신라국을 폐지하여 경주(慶州)라 하고, 그 지역을 〈김부의〉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고려사 태조 18년 12월


임금이 마암(馬巖)의 단(壇) 아래에 가서 좌명 공신(佐命功臣)과 더불어 삽혈 동맹(歃血同盟) 하였는데, 제복(祭服)을 입었다. 그 서약한 글은 이러하였다.".....자손 만대에 오늘을 잊지 말지니, 진실로 혹시라도 이익을 꾀하여 해(害)를 피하고, 사(私)를 껴서 공(公)을 배반하고, 맹호(盟好)를 범(犯)하고 기망 변사(欺罔變詐)하고, 몰래 헐뜯고 해치기를 꾀한다면 신명(神明)께서 반드시 죽이어 앙화(殃禍)가 자손 만대에 미칠 것이며, 범한 것이 사직(社稷)에 관계되는 자는 마땅히 법으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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