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이길용
이길용 · 종교와 문화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2024/01/24
종교개혁,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하면 사람들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진중한 한 사내를 생각해 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견고하고도 거대한 단일 대오를 이루고 있던 중세 가톨릭 세계에 홀몸으로 저항했던 사람으로 그를 기억한다면, 그처럼 무겁고 진중한 모습의 사내를 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상 속의 루터

하지만 현실 속 루터는 그렇게 회색빛으로 무장한 근엄한 어른만은 아니었다. 라틴어에 능숙했지만 당시 민중이 사용하던 독일어를 끔찍이도 사랑했고, 심지어 대학 강의실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면 욕설도 마다않던 파격적인 선생이 바로 루터였다. 물론 그 때문에 교수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루터의 욕설 행진은 쉬 입술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빡빡했던 수도사로서의 일정 때문인지 그는 종종 변비로 고생하였고, 그 때문에 찡그린 인상에 짜증 또한 만만치 않던 괴팍한 성격의 사내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평생 제자이자 동지로 종교개혁이란 고단한 여정을 함께했던 멜란히톤(Philip S. Melanchthon, 1497-1560)조차 루터가 사망한 후 생전 그의 표독스러운 독설과 짜증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을까. 이처럼 현실에서 만나는 루터는 매우 인간적이고 소박하며, 또 쉽게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의 사내이기도 했다. 
   
종교개혁은 해석학적 운동
이렇게 평범한 사내 루터가 어떻게 중세를 마감하고 근세를 여는 ‘종교개혁’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예서 우리는 종교개혁에 대한 역사-문화적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종교 조직의 개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가톨릭’이라는 낡은 제도를 뒤로하고, ‘프로테스탄트’라는 새로운 것을 앞세운 것이 바로 루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터가 개혁하려고 한 것은 종교란 ‘제도’가 아니다. 그가 사용했던 ‘종교’( religio)란 낱말은 지금 뉘앙스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독일 Marburg대학교 종교학 박사. 학위 후 귀국하여 지금은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 관심 분야는 ‘동아시아 종교’, ‘종교학 방법론’, 그리고 ‘해석학적 문화 비평’이며, 제대로 된 <한국종교사상사> 하나 펴내는 오랜 꿈을 꾸고 있다.
22
팔로워 51
팔로잉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