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언플러그(Unpl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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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언플러그(Unplug)

비극이 일어난 날, 근처 강의 보는 적정량의 11배 물을 이고 있었다

윤신영
윤신영 인증된 계정 · alookso 에디터
2023/07/18
지난 14~15일 전국 강우량 관측소에서 측정한 이틀간의 누적 강우량을 강우의 영향을 직접 받는 전국의 하천 실폭 지도 위에 겹쳤다. 빨간색과 노란색, 녹색, 파란색 순으로 강우량이 많은 지역이다. 원의 크기가 큰 곳은 비 온 시간이 긴 곳이다. 충청도와 전북, 경북 북부를 잇는 곳의 집중호우가 두드러진다. 윤신영 alookso 에디터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로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인근 미호강에서 넘친 물이 차오르던 15일 오전 9시. 모두의 시선이 이곳에 쏠린 사이, 약 17km 떨어진 미호강의 본류 금강에서는 또다른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2012년 운영을 시작한 세종보가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수율이 1000%를 넘어고 있었다. 100%가 아니다. 570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세종보에 그 열 배가 넘는 6060만 톤의 물이 저장돼 있었다. 수위는 21.7m를 넘고 있었다. 관리수위 11.8m는 물론, 상한수위 12.3m, 홍수주의보 수위 18.02m, 홍수경보 수위 21.272m(인근 햇무리교 기준)를 모두 넘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이날 7시 이미 홍수경보를 발령했다. 2012년 세종보 운영 이후 상한수위를 넘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21m를 넘어간 적은 처음이었다. 보 안전의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계획홍수위 23.43m에 근접하고 있었다. 세종보의 계획홍수위는 이 지역에 200년에 한 번 발생할 큰 홍수에 물이 차는 높이다.

세종보의 저수율은 이후로도 계속 증가하다 오후 1시에 1100%를 넘긴 뒤에야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위 역시 22m를 넘어 계획홍수위에 1.4m까지 근접했다 줄기 시작했다. 천만 다행으로 비가 더이상 오지 않았다. 세종보보다 하류에 위치한 공주보와 백제보 역시 계획홍수위의 수십cm 전까지 물이 찼다 빠졌다. 공주보와 백제보의 계획홍수위는 100년 빈도의 홍수에 물이 차는 높이다. 

만 사흘이 지난 18일 정오까지도, 세종보의 저수율은 여전히 260%를 넘은 상태이며, 비가 오면서 다시 상승 중이다. 


막대한 피해 부른 14~15일 중부 집중호우

지난주 집중호우로 충청도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4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전국에서 1만 명 이상이 대피한 역대급 집중호우로 기록될 예정이다. 아직 폭우는 그치지 않았다. 19일까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최대 400mm의 폭우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왜 이렇게 큰 피해가 갑자기 발생했을지 데이터를 중심으로 추정해 봤다. 그 결과 이번에 충청도 일대에 내린 비는 지역에 따라 최근 12년 사이에 가장 많은 시간당 강우량을 기록한 비가 맞았지만, 기존 최고치에 비해 월등히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도내 곳곳에서 큰 피해를 낳은 이유를 추정하던 과정에서, 보 등 인프라에 가해진 부담이 시간당 강우량의 증가폭 이상으로 월등히 치솟았음을 알게 됐다. 일부 보의 경우 정상적인 저수용량을 10배 이상 초과해 물을 가두는 등 건설 이후 한 번도 맞이한 적이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7월 9~13일과 14~15일의 지역 별 강우량 차이를 비교했다. 빨간색 계통이 강우량이 많다. 13일까지는 경기와 수도권 중심으로 비가 왔지만, 14~15일 충청도 쪽으로 비 패턴이 바뀌었다. 가장 많이 비가 온 곳은 세종으로 이틀간 467mm가 내렸다. 윤신영 alookso 에디터


 


1. 누적 강우량 가장 많았던 세종 인근

지난 7월 9일부터 15일 자정까지 시간 별 강우량 데이터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받아 분석했다. 강우가 기록된 국내 관측소 데이터를 합산해 일주일 누적 강우량을 보니 세종 부근에서 563.2mm가 관측돼 이 지역에 비가 가장 많이 왔음을 알 수 있다(위 인터랙티브 지도 참조). 세종을 중심으로 서쪽으론 전북 군산, 동쪽으로는 경북 문경과 봉화, 영주 등에 많은 비가 내렸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13일 이전과 14일 이후의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13일 이전에 가장 많은 비가 관측된 곳은 경기도 양평으로 5일간 216.7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위 지도 왼쪽). 하지만 14~15일에는 전북-충청도-경북 북부로 이어지는 구간에 비가 집중됐다. 가장 많은 비를 기록한 곳이 세종으로, 단 이틀간 466.7mm가 집중적으로 내렸다(위 오른쪽 지도). 세종은 이번 궁평2지하차도에서 불과 10여 km 떨어진 곳이다.
7월 9~16일 누적 강우량 상위 70위 관측소의 관측 기록. 진한 파란색이 세종시의 시간당 강우량 기록 중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10위권 바깥에 존재한다. 윤신영 alookso 에디터
특이한 점은 세종이 순간 강우량이 가장 많았던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시간 강우량이 높게 관측된 곳 순으로 데이터를 정렬해 보면 세종은 10위권 밖에서야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위). 마찬가지로 비가 온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비교적 많은 비가 꾸준히 내린다는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었기에 가장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2. 한계 직전까지 갔던 금강의 다기능보

비가 내리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흐르다 보면 같은 곳에서 만나기 마련인데, 이렇게 하늘에서 내린 비가 같은 곳으로 향하는 지역을 유역이라고 한다. 집중호우로 불어난 유역의 물은 결국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강의 수위를 확인하면 홍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세종 인근의 대표적인 강은 금강이다. 이 지역 일대가 금강 유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금강에는 4대강 사업으로 세 개의 다기능 보가 설치돼 있다. 가장 상류에 있는 보가 세종보다. 세종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류인 미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수km 떨어져 있다. 2012년 운영을 시작했지만, 다기능 보의 효과(특히 홍수 조절 능력) 측면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오히려 수질 오염 등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이 일어 2018년 말부터 수문을 개방해 운영 중이다. 보를 해체하고 재자연화하자는 주장에 논쟁도 치열하다. 

케이워터 물정보포털 다기능보 관리 현황수문 운영 현황, 금강홍수통제소 실시간 수문자료, 국가수자원관리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금강의 보 데이터를 받아 분석했다. 산발적으로 내리던 비는 14일 오전부터 꾸준히 높은 강우량을 기록했고, 저수량과 저수위는 급격히 올라갔다. 세종보와 공주보 모두 15일 오후 1시에 수위와 저수율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종보는 수위 22m, 저수율 1100%를 초과했고, 공주보는 수위 17.34m, 저수율 300%를 초과했다. 참고로 공주보의 계획홍수위는 17.72m다. 
이 수치가 일반적인지 확인하고자 지난 12년 데이터를 받아 경향을 살펴봤다. 구체적인 수치는 위 물정보포털의 내용과 조금 달랐지만, 세종보와 공주보 모두 전례없는 저수율과 수위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종보의 특수한 상황일까 싶어 보다 하류의 공주보도 12년치 데이터를 확인해 봤다. 세종보보다는 수위나 저수율이 낮지만, 역시 전례 없는, 역대 가장 심한 위기를 맞았다.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기후위기를 버틸 수 있을까

다기능보 등 인프라가 계획홍수위에 가까운 홍수를 경험하거나, 심지어 그 이상의 수위를 경험한다고 해서 바로 인프라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댐이나 보가 계획홍수위까지 물은 담는 것은 하류 부분의 홍수를 최대한 조절하기 위한 공학적 운영 방법이기도 하다. 수자원 측면에서는 계획홍수위 자체를 ‘홍수조절을 위해서 상류에서 유입되는 홍수량을 저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로 정의하기도 한다. 

실제로 계획홍수위를 넘거나 임박하게 물을 담은 경우가 최근에도 있었다. 2020년 8월 장기간의 장마로 호우가 이어지자 섬진강댐은 계획홍수위를 19cm 넘는 물을 담기도 했다. 금강의 용담댐도 계획홍수위 5cm 전까지 물을 담았다. 모두 하류 부분 홍수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안전 측면에서 부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수자원 부문을 맡고 있는 이한구 이사는 2020년 8월 정부 브리핑에서 섬진강댐의 계획홍수위 초과 운영에 대해 설명하면서 “댐이 안전하지 못할 수 있는 수위”라고 표현했다. 설계상 운영이 가능한 수위는 맞지만, 초과시 부담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더구나 세종보와 공주보 등 금강의 다기능 보는 수문을 완전히 열어 물을 담는 기능을 해제한지 여러 해째다. 하류 홍수 방지를 위해 계획홍수위까지 수위를 높인 게 아니라, 최대한 방류를 허용하는 중에도 계획홍수위에 근접했다는 뜻이다. 15일 이후 비가 잠잠해져서 다행이었지, 만약 비가 몇 시간 더 이어졌더라면 금강의 보들은 계획홍수위를 넘었을 것이다. 더 열 수문도 없는 상태이므로 더이상 손 쓸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보가 홍수를 막는다는 주장은 적어도 이번 사례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보 상류의 범람 위기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계획홍수위까지 물을 담아 하류 쪽의 홍수를 막았다고 하기엔 이미 수문을 완전히 개방한 상태였다. 물을 의도적으로 담은 게 아니었다. 물론 수문을 열어도 수위가 약간 상승하는(물을 저장하는) 효과는 있지만, 2021년 2월 환경부가 발간한 보고서 ‘4대강 보의 홍수조절 능력 실증평가’에 따르면, 금강의 보는 그 수치가 수cm로 아주 미미하다.)

결국, 이번 14~15일의 집중호우로 금강 일대가 더 큰 수해를 입지 않을 수 있던 것은 비가 15일 그쳐서 더이상의 물이 유역에 공급되지 않았던 덕분이다. 만약 비슷한 호우가 몇 시간 더 이어졌더라면 피해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극한기후현상의 발생 빈도다. 보 건설 불과 10년만에 100년(공주보, 백제보),200년(세종보)만의 홍수에 육박하는 비가 우연히 일찍 찾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극한기후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커진 탓일 수도 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극한기후현상은 점점 늘고 세질 것이다. 호우가 보의 계획홍수위 직전에 딱 멈춰주지 않을 때도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금강홍수통제소 자료를 보면, 금강 수계에 내려진 홍수 특보는 증가 추세다. 주의보 및 경보가 모두 2020년 이후 급증해 있다(홍수 경보와 주의보는 지점에 따라 각기 발령된다. 횟수가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광범위한 지역이 홍수 위험에 노출됐다는 뜻, 그러니까 홍수 위험이 커졌단 의미일 수도 있다.).
참고로 한강홍수통제소가 2012년 펴낸 '홍수예보시스템 구축 및 개선 - 금강 삽교천'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1년 17년 사이에 홍수 경보는 총 6번 발령됐다.

이번 호우는 안타까운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운영상 막을 수 있는 피했다는 점에서 ‘인재’였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면 더 큰 피해를 낼 미래의 재난을 방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비록 설계상 허용 범위긴 하지만, 인프라가 손쓸 수 있는 한계 직전까지 재해가 진행된 이번 일을 통해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기대고 있던 인프라 설계 안전 기준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노멀’에 적합한가.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는 않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정확한 홍수 예측이 필요하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2022년 한국수자원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하천에 흐르는 물을 이용해 더 정확히 홍수량을 예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속 유량 자료라고 하는, 실제로 측정한 강물의 양 자료를 수십 년 확보해 예측해야 정확한 홍수 예측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한국은 30년 이상 연속 유량 자료가 매우 드물어 이 방법을 널리 쓰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강우량 자료를 중심으로 기존 홍수 자료 및 흔적, 경험식 등을 활용해 산정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게 권 교수팀의 주장이다. 더 정확한 자료를 구축하고 기후변화 영향을 고려한 홍수 예측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따른 극한기후현상을 고려해 하천 설계 기준을 상향해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이미 2020년 12월 행정안전부 중심으로 국가하천의 설계 기준을 100~200년만의 홍수에서 최대 500년만의 홍수로 늘렸다. 문제는 기존 인프라다. 100년만의 홍수를 견딜 수 없는 구조물이 21%에 이른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 서유럽지역정보센터(UNRIC)는 “극한의 기후변화 이벤트로부터 보호하면서 국가의 회복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인프라’를 제안한다. 대표적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시는 교량과 산업시설을 건설하면서 미래의 기후 조건을 고려해 터널과 도로의 배수 용량을 늘리고 물을 바다로 배출하도록 설계했다. 

맥킨지는 인프라의 적응 관련 지출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인프라에 미치는 영향은 비단 물 관련 인프라에 국한되지 않을 예정이다. 교통, 에너지, 통신 등 시스템이 홍수나 폭우, 태풍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평가됐다. 맥킨지는 이런 기반시설이 기후변화 적응 관련 지출의 60~80%를 차지하게 돼 2050년이면 매년 최대 4500억 달러(567조 원)가 적응을 위해 지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현재는 전체 인프라 투자 규모에 비해 적응 지출이 1~2%로 낮은 상태다. 이것을 늘려 인프라의 설계, 건설, 유지, 관리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기자상을 수상한 과학전문기자입니다. 과학잡지·일간지의 과학담당과 편집장을 거쳤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인류의 기원(공저)' 등을 썼고 '스마트 브레비티' '화석맨' '왜 맛있을까' '사소한 것들의 과학' '빌트' 등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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