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 K-장녀이자 IMF 키즈의 눈으로 다시 쓴 가족 흥망사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4/02/27

내 집 없는 설움,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는 디아스포라, 2년마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면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 불안정한 제반 환경은 스무 살의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주거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리멸렬한 삶에 종언을 고하고 안정된 삶을 얻고 싶었다. 답답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마다 습관처럼 혼자중얼거렸다. ‘사람답게 살려면 집이 있어야 돼.’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대는 와중에도 집을 향한 소유욕은 꺾이지 않았다. 어느 주말 오후,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부동산 경매’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쌍둥이처럼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눈에 띄었지만, 딱히 끌리는 책은 없었다. 부지런히 웹서핑을 하던 중 G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개강한 ‘부동산 실전경매’ 과정을 발견했다. 주 1회 2시간씩, 총 12회에 걸쳐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수강료도 저렴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곧장 수강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부동산 경매를 배우면 현실의 돌파구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었다. 순진하고 야무진 착각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멸했다. 강의 회차를 거듭할수록 해소되지 않는 찜찜함이 쌓여갔다. ‘어떻게 이토록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돈벌이가 합법이 되었을까?’ 남의 불행을 헐값에 사들이며 만끽하는 기쁨, 벼랑 끝에 내몰린 인간의 절박함을 ‘빚’까지 내서 낙찰하는탐욕, 투자와 투기의 애매모호한 경계. 이것이 부동산 경매의 본질이었다.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몽골 땅이 평당 100원’이라는 말이 귓전에서 윙윙거렸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빼앗아야 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은 얼마든지 짓밟아도 되는 것이었다.

강의 마지막 날, 다들 부자 되라고 덕담하는 회식 자리에서 나는 남몰래 꿍꿍이를 꾀했다. 야만적인 ‘부동산 매매 사업’이 합법이 된 경로를 추적해 보고 싶었다. 모임이 파한 뒤 귀가하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꼼꼼하게 계획표를 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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