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세계] 인도차이나 - 5.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재문
이재문 · 역사와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3/04/11
원래 루즈벨트의 구상에서 전후 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는 중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국공내전의 패배로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이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했죠.
또, 미국의 동맹국인 프랑스 역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점령기 베트민을 지원했던 미국이지만 이젠 프랑스 편을 들게 됩니다.
 
국경 남쪽에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인도차이나 사회주의 연방이라는 거대 세력이 등장하는 걸 경계했던 중공은
제네바 회담에서 베트민의 야심을 꺾었으며 이제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했습니다.
 
제네바 협상의 결과로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프랑스군은 철수했습니다.
프랑스는 경제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했고
북아프리카에서 독립운동이 대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인도차이나에 국력을 쏟아부을 수 없었죠.
 
이제 떠난 프랑스군을 대신해 미군이 개입하게 됩니다.
북베트남과 게릴라 세력(베트콩)으로 부터 공격받는 남베트남 정부를 도와 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였죠.
 
미국의 지원으로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을 압도하는 무기들을 보유했지만 전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1. 베트민의 토지 개혁을 남베트남 정부가 다시 되돌렸기 때문에 농촌에서 민심을 잃었습니다.
농민들은 게릴라들에게 협조했고 그들 스스로가 게랄라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2. 남베트남 대통령은 가톨릭신자였고 베트남 인구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 신자들을 탄압했습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불교 승려들이 분신자살을 하기도 했으나
영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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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크 재활병원 출신 현 개원 한의사 취미는 역사와 축구입니다. 건강 관련 의학상식이나 혹은 제가 취미로 다루는 분야의 얇팍한(?) 지식들을 아마추어 수준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정리하는 글들을 써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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