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상남자'인가 '꽃미남'인가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 alookso 에디터 박윤경입니다.

첫 글이라 머쓱하네요. 제 tmi를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전 7년차 아미인데요, 집에서 플랭크를 할 땐 꼭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틀어놓습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이 뮤비를 내놓기까지 최애가 흘렸을 피 땀 눈물의 천분의 일도 안 된다'고 곱씹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시간도 나름 빨리 가고, 고퀄리티 뮤비를 공짜로 본다는 미안함(?)도 조금이나마 씻기는 느낌입니다. 가사에 담긴 사회·문화적 메타포가 서사 구조와 이미지를 통해 생생히 구현되고, 다른 뮤비들과도 하나의 퍼즐처럼 세계관이 맞춰지는… 아미로서 자부하는데, 방탄소년단 뮤비는 대중예술의 혁명(!)입니다.


😲이 동아시아의 아름다운 남성들은 당최 무엇인고!

그런데 유튜브에 올라온 방탄 뮤비에는 이런 내용의 영어 댓글이 참 많습니다.
"아시아 남성들은 어째서 이렇게 아름다운 거죠? 여자보다 예쁘잖아!"

티 없는 피부, 빛나는 눈 화장, 화려한 머리색(참고로 제 최애는 은발이 잘 어울립니다)… 멤버들이 찰떡 같은 메이크업과 패션을 선보이고 나올 때마다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건 한국 아미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에선 놀라움의 정도가 더욱 강한 것 같아요. 도대체 이 '동아시아만의 부드러운 남성성(East-Asian soft masculinity)'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피고 분석하는 기사와 논문이 쏟아지거든요. 고대 신라의 화랑 문화에서 기원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영국 킹스턴대 영화·미디어학부의 콜레트 발메인 교수, 이 분 범상치 않은 아미인데, 방탄이 미투 운동 이후 절실했던 '유해한 남성성의 대안'이자 긍정적 롤모델을 제시한다는 평을 내놨습니다. 서양에선 장대한 골격과 강인함을 갖춘, 소위 '마초 남성성'만이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방탄의 남성성은 보다 부드럽고 유연하다는 것이죠.

사실 아름다운 외양으로만 따지면 방탄이 K-pop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는 아닙니다(특히 저는 지드래곤이 여성용 샤넬 트위드 재킷과 진주 목걸이를 처음 걸치고 나왔던 모습을 잊지 못하는데요). 발메인 교수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방탄은 아름다운 외양과 함께 '소년 남성성'을 내세웠다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이 뚜렷해집니다. 방탄은 <화양연화>, <Love Yourself> 앨범 시리즈를 발매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 앨범들은 어른이 되기 직전의 소년들이 겪는 방황과 불안, 그리고 성장을 주제로 합니다.

(잠시 영업도 할 겸) <화양연화> 시리즈의 시작을 연 곡 <I NEED U> 뮤비를 들여다볼까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멤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다들 어딘가 아픔이 있어요.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유리병을 휘두르지만 결국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주유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이 바닥에 던지고 간 지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거나, 즐비한 알약통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다가도 언제 아팠냐는 듯 서로 장난을 치고, 둘러 모여 모닥불을 쬐고 웃기를 반복합니다.


🧑'머슴아'와 다른 '소년'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사실 앞서 말한 <화양연화>, <Love Yourself> 앨범이 나오기 전 데뷔 초부터 방탄은 줄곧 10·20 정체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방탄소년단' 이름이 '방탄복이 총알을 막아내듯 10·20을 향한 억압과 편견을 막아내겠다'는 뜻인 건 많이들 아시지요? 노래와 무대 콘셉트로도 이어집니다. 가령 데뷔 곡 <No More Dream>에는 '얌마 니 꿈은 뭐니 니 꿈은 겨우 그거니', '철 좀 들어 제발 좀 너 입만 살아가지고 임마 유리멘탈 boy'라며 또래를 준엄히(!) 꾸짖는 파트가 있었고요. '되고파 너의 오빠', '꽉 잡아 날 덮치기 전에'라며 경고했던 <상남자> 활동 무대에선 주로 교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서슴없이 연약함을 드러내는 '소년'이라기보단, (겉모습은 귀여울지라도) 거칠고 센 '머슴아'의 모습에 가깝지 않나요? '머슴아'는 다른 보이그룹들도 자주 차용하는 콘셉트입니다. 특히 신인 그룹에겐 통과의례와도 같죠. 대표적으로 2013년 엑소가 교복을 입고 나와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를 외친 뒤 전례 없는 메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방탄만의 '소년 남성성'이 뮤비 속 패션을 통해 구현되는 방식을 분석한 연구(정연이·이영재, 2020)도 있습니다('버틀러의 수행성 이론으로 본 BTS 뮤직비디오 패션스타일의 젠더 이미지 분석', 제목부터 흥미롭죠?) 완전히 자의적으로 <화양연화> 발매 이전을 '머슴아' 시절, 발매 이후를 '소년' 시절로 칭해보겠습니다. '머슴아' 시절 패션에 대해 논문은 방탄이 금속 액세서리를 과시하듯 걸치거나 중앙을 높게 세우고 옆머리를 미는 헤어스타일 등 '전통 갱스터 힙합 패션'을 보인다고 분석합니다(사진1). 그러다 '소년' 시절로 넘어가선, 아무런 액세서리 없이 몸 선이 드러나는 얇은 티셔츠를 입는 등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패션이 등장하게 됩니다(사진2). 간혹 강렬한 패션을 입어도 '머슴아' 시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화양연화> 수록곡 <Run> 뮤비에서 멤버들은 1960년대 말 영국 청년 노동자 계층에서 유행했던 '스킨헤드 패션'을 선보이는데요. (머리를 밀고 나왔다는 건 아니고) 서스펜더, 블루종 등 당시 청년들이 스스로를 기성 세대와 구별하는 데 활용했던 아이템을 방탄이 적극 차용했다는 분석입니다(사진3). 이러한 경향은 이후 <피 땀 눈물>,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에서 여성용 드레스를 셔츠처럼 입거나, 깃털, 레이스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등 젠더 경계를 가로지르는 패션으로 이어집니다(사진4).


🔍서구에 남성성의 '교훈'을 주는 한국 사회?

여하튼! 간혹 '멤버들이 게이냐', '너무 계집애 같다' 등의 악플이 달리긴 하지만, 방탄 특유의 '소년 남성성'이 서구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남성성의 범주를 넓혀주고 있는 건 확실해보입니다.

그렇다면 '방탄 보유국' 한국이야말로 남성성의 정의와 범주가 가장 개방적인 사회라 자부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여성과 남성에 대한 규정 자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진보적 감수성의 첨단에 서 있는 그런 사회요. '남성성의 대안을 제시한다' 등의 찬탄에 우리는 뿌듯한 마음으로 '국뽕'에 취하면 되는 걸까요?

너무 '답정너' 같은 질문 죄송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봐요. K-pop은 마초 혹은 폭력적인 남성성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한국 사회 역시 남성성에 관해 진보적 토양을 갖췄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K-pop 자체가 (다른 모든 대중예술이 그러하듯) 흠결투성이입니다. 몇 년 전까진 방탄도 가사가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숱하게 받았지요. 아미로서 마음이 찢어져도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여자들은 방정식 우리 남자들은 해'(<호르몬 전쟁>), '그래 넌 최고의 여자, 갑 질 (중략) 갑 떼고 임이라 부를게 임질'(<농담>) 등이 있었습니다. 이에 팬덤에서 먼저 가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고, 소속사로부터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여성혐오 지적을 참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이릅니다. 이렇듯 K-pop을 일종의 바이블처럼 여기면 곤란합니다. K-pop 역시 (다른 모든 대중예술이 그러하듯) 창작자와 이용자의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 관해선, 동아시아 대중문화 연구자인 토론토대 미셸 조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가져와볼게요. "한국은 호모포비아가 굉장히 흔하기 때문에 젠더 표현이 성적 지향과 절대 연결되지 않는다"는 분석인데요, 좀 어렵네요. 풀어서 보자면,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서구와 같이 '게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벌어질 여지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뮤비에서 남자들이 '여자처럼' 꾸미고 나오거나 서로 스킨십이 잦아도, 그들을 게이로 생각할 사람은 없다는 거죠. 샤넬과 진주 목걸이가 찰떡 같이 어울렸던 지드래곤은 군 입대 직전 콘서트에서 이런 소감을 밝힙니다. "남자가 되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전역하면) 더 이상 이전처럼 손톱을 칠하지 못할 수도 있다". K-pop과 한국 사회, 겹치는 듯 분리된 두 공간에서 남성성이 각각 어떻게 구현되는지 엿볼 수 있는 한 마디라 생각합니다.


'K-pop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가 뭘까요?'를 묻는 토픽인데, 엉뚱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네요. 이유가 뭔지는 정확히 댈 수 없고(…), K-pop이 과연 세계를 제패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각종 차트에서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소식은 간간이 들려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K-pop이 글로벌 시장의 패권을 잡았느냐? 글쎄요… 미국 MTV의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는 2019년부터 '베스트 K팝' 부문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상자는 3년 연속 방탄이고요. 그런데 팬덤은 이를 마땅찮게 생각합니다. 주요 시상 부문인 '올해의 아티스트' 등엔 노미네이트도 잘 하지 않으면서, '베스트 K팝' 부문이라는 허울 좋은 이방인 차별만 일삼고 있다고요.

개인적으로 K-pop이 아직까지는 세계를 제패했다기보다 글로벌 시장에 진입해 균열을 내고 있다고 여겨져요. 안희제 얼룩커가 말씀해주셨듯, 이 과정에서 K-pop 아티스트들이 '게이냐' '계집애 같다' 식의 혐오와 멸시를 맞닥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이를 보면 왠지 모를 애국심(?)과 함께 분노가 치밉니다만, 저는 이 여정이 서구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성찰과 변화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작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방탄 보유국'의 임무는 비단 온라인에서 화력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은 이미 행동에 나선 듯싶기도 하고요(아래 사진을 봐주세요)! 제 최애가 다양한 머리색과 패션을 시도하거나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아들일 때, 적어도 '남성성'이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플랭크 하면서 뮤비 보기'에 이어 '젠더 공부하기'를 제 끝없는 덕질 리스트에 추가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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