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루스'의 의미, 성차란 무엇인가 - 라캉 읽기
라캉의 관점에서 젠더 및 섹스의 ‘존재’에 관한 질문은 라캉 언어 이론의 목적 자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라캉은 서구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존재론에 주어진 우선성을 반박하면서 “존재란 무엇인가?/ 무엇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이 “부권적 경제의 의미화 실천을 통해 어떻게 ‘존재’가 제도화되고 배치되는가?”라는 그 이전의 질문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존재와 부정,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은 아버지 법과 그것의 변별화 기제라는 구조를 갖는 언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물은 ‘존재’라는 특징을 띤다고 여겨지고, 그 존재론적 제스처가 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의미화의 구조 안에서만 가동된다. 그 의미화 구조는 상징계처럼 그 자체가 존재론 이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팔루스라는 ‘존재’, 즉 성차를 자신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법의 의미화를 공인하는 그 존재에 대한 선험적 탐구가 없다면, 존재론 자체에 대한 탐구에 접근해볼 길이 없다. 팔루스‘임(being)’과 팔루스 ‘가짐(having)’은 언어 안에서 다양한 성적 위치/위치 없음을 의미한다. 팔루스‘임’은 (이성애화된) 남성적 욕망의 타자가 될 뿐 아니라, 그 욕망을 재현하거나 반영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여성적 타자성 안에서의 남성성의 한계가 아니라, 남성적인 자기 이론화의 장소를 구성하는 타자이다.
여성에게 팔루스‘임’은 팔루스의 권력이 반영된다는 것, 그 권력을 표시하는 것, 팔루스를 ‘체현’하는 것, 팔루스가...
여성에게 팔루스‘임’은 팔루스의 권력이 반영된다는 것, 그 권력을 표시하는 것, 팔루스를 ‘체현’하는 것, 팔루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