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6
현지에 살고있는 샤니맘입니다.
임란칸 총리의 탄핵으로 그의 펜들이 전국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연상케 하지만 그것보다 몇십배의 규모지요..(인구가 3억을 향합니다.)
글을 너무 잘 써주셔서 파키스탄에 대해 모르는 분들도 관심이 생길것 같습니다. ㅎ (감사드려요~^^)
사실....
처음부터 파키스탄이 친중국가는 아니었어요.
2004년 무샤라프총리때는 친미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일대일로는 셰바즈 샤리프의 형님이신 나와즈 샤리프(전총리)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서 육로를 개통해서 관광사업을 육성하고 무역에서도 비용을 줄이는 ...(이번엔 정말 이루어 지는 줄 알고 두바이같은 경우에는 해상무역 접으려까지 했었습니다. 두바이는 원래 세금이 없기도 했지만 육로가 개통되면 굳이 배로 보...
임란칸 총리의 탄핵으로 그의 펜들이 전국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연상케 하지만 그것보다 몇십배의 규모지요..(인구가 3억을 향합니다.)
글을 너무 잘 써주셔서 파키스탄에 대해 모르는 분들도 관심이 생길것 같습니다. ㅎ (감사드려요~^^)
사실....
처음부터 파키스탄이 친중국가는 아니었어요.
2004년 무샤라프총리때는 친미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일대일로는 셰바즈 샤리프의 형님이신 나와즈 샤리프(전총리)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서 육로를 개통해서 관광사업을 육성하고 무역에서도 비용을 줄이는 ...(이번엔 정말 이루어 지는 줄 알고 두바이같은 경우에는 해상무역 접으려까지 했었습니다. 두바이는 원래 세금이 없기도 했지만 육로가 개통되면 굳이 배로 보...
동남아는 솔직히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이렇게 글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네요.
그건 그렇고 군부 문제는 대학교 때 어떤 교수가 한국은 군부독재를 굉장히 빨리 정리했다고 칭찬하신 기억이 있는데 그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런 기사를 보니 한국이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싸워주신 분들의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망각하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와가보드에 왔다 가셨습니까?
오늘 육로개통 시작되었습니다. ㅋ 코로나때문에 국경 봉쇄했었거든요ㅡ 저희집에서 딱 30분 걸리네요. 국기하강식은 유명하죠.!! ㅋ 정말 반갑습니다.ㅎㅎ
벽하나 두고 게이트에서 마주볼뻔 했네욥!ㅋㅋㅋ
인도는 가본 적 있는데, 파키스탄은 한 번도 가본적이 없네요.. ㅎㅎ 인도 암리차르 와가국경에서 파키스탄과 인도사이 재밌는 국기하강식 재밌게 본 적이 있습니다. 비싼 카메라 들고 외국인이라고 하니 VIP석으로 안내하던 ㅎㅎ
역사학을 공부했지만 제2,3세계 국가들에게 관심이 많아 자주 찾아봅니다.
제 글이 현지 교민분께서 읽어주셔서 감사하네요 ^^
여기 살다 가신건가요??? 정확하게 알고 계셔서 솔직히 놀라는 중입니다.ㅎ 공부를 따로 하신건지 신기방기 하네욥!! ㅋ
맞습니다. 아예 대놓고 파키스탄인들은 중국은 우리 형제국가라고 합니다.ㅎ 지금은 언제 친미였나 할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죠!!!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고 제일 먼저 도착한게 중국 의료진과 시노팜.시노백 백신이었습니다. 임란칸 총리를 비롯해서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방송을 했죠.
러시아와의 관계는 육군 동계 훈련을 함께 할 정도죠. ㅋ
저도 가끔 글 올리겠습니다.ㅎ
와~ 현지에서 더 생생한 소식 감사합니다.
제가 몰랐던 부분도 많네요.
음.. 저는 파키스탄이 친중이자 친미국가였다고 생각해요. 친미의 시작은.. 냉전때부터 반러시아의 국가였고, 1979년 소련 - 아프간전쟁 때부터 미국이 아프간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매우 가까워지죠..
미국과 관계는 서로의 국익에 따라 관계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했습니다. 소련- 아프간 전쟁때 파키스탄이 필요해서 핵실험하는 걸 묵인했고, 결국 파키스탄으 98년에 핵개발에 성공하죠. 전세계적 비난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미국이 경제제제를 파키스탄에게 강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3년만에 제제가 풀리는데 2001년 911 테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빈라덴의 아프간이랑 전쟁해야 했고, 다시 미국이 파키스탄이 필요해졌죠. 아마 무샤라프 정권의 친미관계는 부시가 아프간 전쟁으로 경제제제 풀어주고 어마어마한 군사/경제 원조를 해주면서 시작됩니다.
2011년즈음.. 미국- 아프간 전쟁 중반이후 친미관계가 삐걱거렸다고 생각해요. 빈라덴을 파키스탄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있었고, 실제 빈라덴이 잡힌 곳도 파키스탄 수도의 고급 주택가였죠. 빈라덴 때려잡으려고 파키스탄 도와줬는데, 제대로 돕지도 않고.. 탈레반 테러 조직를 봐주는 것때문에 미국과 마찰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원조한 것도 빼돌리고 하다보니.. 트럼프때 원조 중단과 인도 쿼드 가입으로 물건너간거 같아요.
중국의 경우도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인도의 적이 중국이라 적의 적은 친구라고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관계는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62년 중국와 인도 전쟁때 파키스탄이 중국편을 들어주며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특히 중국에서 무기도 많이 들고 들어와요. 군부가 친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죠.. 지금까지도 무기 대부분 수입을 중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원조 이후 주력 무기가 미국, 유럽 무기들로 바뀌긴 했지만..경제가 가난하다보니 싼 중국제 카피 제품들이 여전히 많이 들어오고 있고, 글에도 썼지만 경제가 어려움에도 총 예산의 7분1을 국방예산으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전 구식 전차나 무기들은 대부분 중국제입니다.
물론 시기와 정권에 따라 친중이 약화되기도 친미가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파키스탄의 현지 소식이 궁금하네요.
와~ 현지에서 더 생생한 소식 감사합니다.
제가 몰랐던 부분도 많네요.
음.. 저는 파키스탄이 친중이자 친미국가였다고 생각해요. 친미의 시작은.. 냉전때부터 반러시아의 국가였고, 1979년 소련 - 아프간전쟁 때부터 미국이 아프간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매우 가까워지죠..
미국과 관계는 서로의 국익에 따라 관계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했습니다. 소련- 아프간 전쟁때 파키스탄이 필요해서 핵실험하는 걸 묵인했고, 결국 파키스탄으 98년에 핵개발에 성공하죠. 전세계적 비난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미국이 경제제제를 파키스탄에게 강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3년만에 제제가 풀리는데 2001년 911 테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빈라덴의 아프간이랑 전쟁해야 했고, 다시 미국이 파키스탄이 필요해졌죠. 아마 무샤라프 정권의 친미관계는 부시가 아프간 전쟁으로 경제제제 풀어주고 어마어마한 군사/경제 원조를 해주면서 시작됩니다.
2011년즈음.. 미국- 아프간 전쟁 중반이후 친미관계가 삐걱거렸다고 생각해요. 빈라덴을 파키스탄이 뒤에서 봐주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있었고, 실제 빈라덴이 잡힌 곳도 파키스탄 수도의 고급 주택가였죠. 빈라덴 때려잡으려고 파키스탄 도와줬는데, 제대로 돕지도 않고.. 탈레반 테러 조직를 봐주는 것때문에 미국과 마찰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원조한 것도 빼돌리고 하다보니.. 트럼프때 원조 중단과 인도 쿼드 가입으로 물건너간거 같아요.
중국의 경우도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인도의 적이 중국이라 적의 적은 친구라고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관계는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1962년 중국와 인도 전쟁때 파키스탄이 중국편을 들어주며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특히 중국에서 무기도 많이 들고 들어와요. 군부가 친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죠.. 지금까지도 무기 대부분 수입을 중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원조 이후 주력 무기가 미국, 유럽 무기들로 바뀌긴 했지만..경제가 가난하다보니 싼 중국제 카피 제품들이 여전히 많이 들어오고 있고, 글에도 썼지만 경제가 어려움에도 총 예산의 7분1을 국방예산으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이전 구식 전차나 무기들은 대부분 중국제입니다.
물론 시기와 정권에 따라 친중이 약화되기도 친미가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파키스탄의 현지 소식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