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4] 고맙다 수달. 입춘이구나
2023/02/08
‘아지랑이 구름을 뿜어내고,
우주의 기운을 뭉쳐 지녀 신묘한 광채를 발하네.
새 짐승은 온순하고, 벌레와 뱀은 어질며
초록은 향기로워라.’
우주의 기운을 뭉쳐 지녀 신묘한 광채를 발하네.
새 짐승은 온순하고, 벌레와 뱀은 어질며
초록은 향기로워라.’
(이곡 ‘금강산 장안상 중흥비’)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며 친구로부터 일력을 선물받았습니다. 민음사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것으로 매일 옛 고전에서 좋은 문장들을 골라 넣었더군요. 하루하루 일력의 종이 한 장을 뜯어내며 적힌 문장을 읽습니다. 그리고 위의 문장은 바로 지난 2월 4일 입춘에 적힌 문장이었습니다.
한겨울 한파를 겨우 비껴선 2월 초순에 입춘이 있습니다. 아무리 입춘이라고 한들 아지랑이 하며, 신묘한 광채를 발하는 대기, 벌레와 뱀이 있고, 향기로운 초록이 있는 때는 아니지요. 그건 한 달쯤 뒤의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에게 입춘은 은근한 설렘을 동반하는 단어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어머니가 입춘 날에 ‘샛절 드는 날, 샛절 드는 시간’을 중시하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려던 것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여자로서 그리 유쾌했던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이, 제주에서는 ‘샛절 드는 시간’에 여자는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뭔가 부정탄다는 의미였을 텐데, 세시풍속 자료를 보니 여자가 방문하는 집에 그 해 잡초가 많이 난다고 했다네요.)
입춘 아침에 아침 라...
강의 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일합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