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기름이 없습니다”-석유 파동(1974)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1/02
오일쇼크 당시 어떻게든 석유를 사기위해 문닫힌 주유소 앞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출처-월간조선
새해 벽두에 불어 닥친 오일 쇼크
   
1974년 1월 1일 아침. 새해 첫날 사람들은 새로 고시된 국제석유시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원유가는 배럴당 9달러를 넘어서더니 이제 1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지난 가을 3달러를 넘어섰을 때도 심상치 않더니 어느새 10달러가 됐다. 국제거래소에서는 원유 선물 가격이 14달러를 넘어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제 기름 값은 매달 오르는 것을 넘어 매일 시시각각 가격이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겨우 세 달 사이에 석유 가격이 세 배나 뛰었다. 가격이 너무나 가파르게 올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1973년 10월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일방적으로 아라비아원유 가격을 17% 인상을 단행한 것이 첫 신호탄이었다. 당시 배럴당 3달러 2센트에서 무려 17%가 급등한 3달러 65센트로 한꺼번에 가격을 올려 버렸다. 급기야 1년 후 1974년 7월에는 국제석유시세가 배럴당 11.65달러까지 치솟았다. 일 년 전 같은 분기 고시된 가격에 비해 무려 400% 인상된 가격이었다. 1년 사이에 기름 값이 네 배가 오른다는 것은 감당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까무러칠 수준이었다. 
「산유국 석유값 배인상 합의」, 『조선일보』, 1973년 12월 21일.
   
지금이야 누구나 어느 때고 실시간으로 각종 경제 지표나 원자재 가격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분기별 시세 발표가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그 영향이 한국에 미치는 것은 또 한참이 지나야 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석 달에 한 번 신문에서 발표하는 경제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비상상황이 되자 한국의 신문들이 거의 매일 변동...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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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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