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위 찬탈의 모범, 명 성조 영락제

정재웅
정재웅 인증된 계정 · 금융공학 박사, 변절 빌런
2023/01/20
명 홍무 3년(1370년), 즉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른지 3년째 되는 해, 11살 짜리 아이가 제후왕으로서 일자왕인 연왕(燕王)*에 봉해진다. 이 아이가 주원장의 넷째 아들 주체(朱棣)다. 나이로 인해 바로 봉지로 가지는 않았고, 21살이 되어서야 봉지에 발을 디뎠다. 지금이야 북경과 그 일대가 중국의 명실상부한 중심이지만, 남경이 수도인 명 초기 상황에서 원의 수도인 대도가 있던 이 지역은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북으로 달아난 원이 지속적으로 침입해왔는데 연왕 주체는 이를 모두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비록 북으로 달아나기는 했을지언정 유라시아를 장악했던 저력은 남아있었기에 명 개국공신으로 최고의 명장이었단 서달과 상우춘도 종종 패하는 일이 있었던 몽골과의 전쟁에서 연왕 주체는 단 한 차례도 패하는 일 없이 전승을 거두었다. 이에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연왕 주체에게 “네가 있어 북방이 편안하고 내가 안심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주 : 중국의 제국에서 제후왕은 일자왕과 이자왕으로 그 급이 나뉜다. 일자왕은 춘추전국시대 옛 국가 이름을 왕명으로 하는 경우로, 연왕, 제왕, 위왕 등으로 봉해지고, 이자왕은 국가보다 한 단계 낮은 군이나 현의 이름을 왕명으로 하는데 제북, 제남, 여남, 회계 등으로 봉해진다. 참고로 고려나 조선의 경우에는 국호로 따지면 이자왕이지만, 중국에 있어 한반도가 갖는 중요성으로 인해 일자왕 중 으뜸가는 지위를 차지했다. 물론 이는 고려나 조선이 중국의 외부 국가로서 사대를 한 특수성 및 중국사의 통일 왕조와 당당하게 투쟁을 한 역사를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황태자가 살아있었다면 연왕 주체는 일대의 효웅일지언정 황제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원장의 장남이자 황태자인 의문태자(懿文太子) 주표(朱標)는 1392년 주원장보다 먼저 죽고 말았다. 

정당한 황위 계승자가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제위 계승자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자연스럽게 넷째인 연왕 주체가 되었다. ...
정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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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한국 경제성장에 있어 정부 정책이 금융시장 발전에 끼친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가상자산 스타트업을 거쳐 금융시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저서로 "변절 빌런의 암호화폐 경제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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