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다연
전다연 · 나는 무엇이 될까?
2024/04/24


세계 일주를 시작한 지 한달 쯤에 우리는 자메이카를 지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이애미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으니 뉴욕에 기항할 때 돌아가야겠다며 하선에 대한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고 있었더랬다.


친한 동료들에게 먼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모두 놀란 눈치로 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듣더니 내가 피스보트에 합류한 가장 큰 이유가 강연자들일 줄은 몰랐다며 크게 놀란다. 자기들은 세계 일주하는 것, 혹은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목표가 있었던지라 강연의 퀄리티는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제야 강연자들에 대한 내 불만이 이해된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나도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그동안 많은 동료들이 사전 미팅 때부터 난장판이었던 강연에 대해 별말 없이 지나갔는지. 좋은 강연 자료를 위해 강연자들과 씨름했던 나를 유난스럽게 생각했는지 말이다. 서로 이 피스보트에 바라던 바가 달랐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험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마지막 기항지가 될 뻔했던 뉴욕에서


이 차이를 가장 크게 경험했던 때는 어느 20대 초반의 승객과 점심을 먹으며 한 강연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다. 엄청난 충격을 선사한 강연자들이 이미 몇 있었지만, 이 강연자는 내 하선 결정에 화룡점정을 찍은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강연 내용은 바로 ‘인플루언서의 디지털 노마드 삶’에 대한 것이었다.

디지털 노마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장소에 제약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인플루언서답지 않게 그의 팔로워 수는 천여 명으로 미비했고, 디지털 노마드 되는 법과 같은 중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고 그저 ‘이런 삶은 아주 좋아요!’, ‘저는 돈 이만큼 많이 벌어요!’ 정도의 말만 늘어놓았던 강연자였다. 하지만 나와 대화한 그 승객뿐만 아니라 크루즈 내의 많은 젊은 승객들은 이 강연자에 열광하고 있었다. 대부분 피스보트를 통해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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