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오픈런'하고 브런치 즐기는 엄마

서리
서리 · 읽고 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
2024/05/17
저녁에 약이 다 떨어졌다. 지난번에 처방받은 약을 다 먹었는데도 아이는 노란 콧물이 나오고 코가 자꾸 막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에는 소아과에 가야겠다. 오전 진료를 보려면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 한다. 병원 오픈 시각은 9시지만 8시 40분부터 접수를 시작하니 그전에 미리 도착해 줄을 서야 한다.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이다. 조금이라도 앞 줄에 서기 위해 주차장에서부터 소아과 입구와 접수창구까지 아이를 안고 뛰는 엄마들의 경주 아닌 경주가 이어진다. 엄마의 품 안에서 조그맣고 동그란 머리통이 흔들린다. 병원 대기실에는 커다란 TV가 걸려 있고, 화면에는 애니메이션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아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틀어 보여주는 부모도 많다. 끝 모를 ‘대기 지옥’을 버티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셈인데, 언제까지 보여줘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소아과 진료가 끝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겠지. 그러면 잠시 편안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의 시간’이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배고플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피곤할 때 누군가의 방해 없이 자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가서 원하는 속도로 배변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시간과 컨디션이 조금 더 허락된다면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을 수도 있겠다.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양육자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대부분 허용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시간적 자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꿀 같은’ 시간을 맞이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먼저 아이가 온 집안에 뿌려 놓은 장난감과 쓰레기와 과자 부스러기를 치워야 한다. 장난감은 종류별로 분류해 담고 큰 쓰레기와 과자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 청소기로 바닥을 민다. 분명히 어제 보았던 빨래 더미와 같은(그러나 어제의 것은 아닌) 새로운 빨래 더미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엊저녁부터 쌓여있는 설거지 더미를 해치운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가득 찬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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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웁니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부글거리는 생각들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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