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
이창 · 쓰고 싶은 걸 씁니다.
2022/12/02

   어느덧 공기가 제법 차가워진 오늘, 12월 2일은 '국제 노예제 철폐의 날'이다. 1949년 12월 2일 UN에서 인신매매 및 성매매 금지 협약을 결의하며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달성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그를 기억하고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1985년에 제정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2015년 '염전 노예 사건'이 CBS, 데일리메일,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보도될 때 한국은 아직도 노예제가 실존하는 국가라는 식으로 대서특필된다. 부끄러운가. 하지만 암암리 존재했던 우리나라의 노예제는 비단 그뿐만 아니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한 중년 소설가는 그를 찾아온 남자에게 총을 겨눈다. 남자는 어렴풋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제가 한병장님을 찾았던 것은 나 대신 죽여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오랜 고통 끝에 간절히 염원한 한 사람의 절규가 귓가를 스친다. 이마를 겨눈 총구. 곧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소설가는 쓰러진 남자 옆에 죽은 듯 누워 먼 허공을 응시한 채 독백한다. 이제 소설을 써야겠다. 아주 좋은 소설을.
1992, 영화 <하얀 전쟁>

  안정효 작가의 장편 소설 <전쟁과 도시>를 토대로 한 장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은 월남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생애를 발가벗겨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악성 조직을 다룬다. 그 안에 전쟁의 후유증과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아내와 이혼하고 월간 시사집에 소설을 연재하지만 나날이 글을 쓰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소설가가 있다. 또 양민을 살해하고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현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살기를 다 포기한 것처럼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부랑인도 있다. 그런 남자가 대략 일곱. 마흔일곱의 소대원 중 그나마 살아남았지만 귀국한 이후부터 다시 전쟁의 남은 잔상, 총성과 폭음 현장을 헤매야 하는 소모품의 숫자다.

  그중 넋이 나간 부랑인 변진수는 그들이 베트콩에게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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