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진화론이 틀린 이유 (1) - 당신이 아픈 것은 진화 때문이 아니다

이한빈 · 유전학과 인과추론을 공부합니다.
2023/02/03
진화론은 생명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설명틀입니다. 현대 진화론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1900-1975)는 "생명현상은 진화 없이 말이 되지 않는다 (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 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생명과학에서 진화론의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인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유전자 중심적인 관점의 진화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이 발행된 1976년 기준으로 인류는 DNA 염기서열을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왓슨과 크릭이 1953년에 DNA의 물리화학적 구조를 밝힌 이후에도 긴 DNA 염기서열을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발표된지 1년이 지난 1977년에서야 프레드릭 생어 (1918-2013)에 의해 생어 시퀀싱 (Sanger sequencing)이 개발되면서 유전자 전체의 염기서열을 해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말인즉, 책의 내용은 상당 부분이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습니다.

진화론이 <이기적 유전자>를 계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후 진화론에 대한 많은 대중 저서가 출판됐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인간의 질병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진화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94년에 출간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에서 저자인 랜돌프 네스는 성인병이 문명 시대 이전에 적응적이었던 형질의 잔재라고 설명합니다. 또,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이론들은 언뜻 보기에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질병과 행동에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대부분 틀렸습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그러했듯 현실에서 경험적인 증거를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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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수학과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유전학과 인과추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부업으로 유전체를 효율적이고 고속으로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합니다. 얼룩소에는 진화와 통계학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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