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 일기] 2. 코털이라니, 무슨 소리야

신예희
신예희 인증된 계정 · 위인입니다
2024/03/21
없던 버릇이 생겼는데, 손가락으로 콧구멍 입구를 톡톡 건드리는 거다. 후벼 파려는 건 아니고(정말입니다) 별문제 없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인데… 문제라니, 무슨 소리냐고? 그게, 얼마 전부터 갑자기 코털이 밖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해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사연은 이렇다. 콧속 저 깊은 곳이 아니라 콧구멍 주위가 자꾸만 간질거리고, 뭔가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코감기도, 알레르기도, 코딱지도 아닌걸. 아잇, 왜 이러지? 그렇게 비비적대고 만지작대다 문득 깨달았다. 코털이구나. 그거 말고는 없어. 화장대 위에 스탠드 조명까지 추가로 켜 놓고서 진지하게 확인하니, 정말이었다. 뜬금없게도 코털이 갑자기 쑤욱 자라나 콧구멍 입구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생전 털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다. 겨드랑이와 성기의 털은 때때로 깎거나 뽑거나 레이저 제모를 해 왔지만 그게 고민거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털이야 원래 자라는 거고, 필요하면 다듬는 거지. 눈썹처럼. 그런데 갑자기 있는 줄도 몰랐던 코털이 길게 자라나고 흠칫할 정도로 굵어지더니 심지어는 콧구멍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털이 삐져나온 사람을 볼 때마다 대체 왜 저러고 다니는지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나 원 참, 깎든지 뽑든지 해야 할 것 아냐. 하지만 이젠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 기분이다. 절대 안 돼. 나의 순백… 까지는 아니어도 꽤 명도 높은 이미지를 어떻게든 지켜야 해.
 
머리카락은 나이를 먹을수록 가늘어지고 쉽게 빠지기 일쑤인데, 왜 코털은 뜬금없이 쑥쑥 자라는 걸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테스토스테론, 즉 남성 호르몬의 문제란다. 지긋지긋해라, 또 호르몬이야. 갱년기 이후 무슨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대부분 호르몬 탓이다. 테스토스테론이 5 알파 환원효소(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와 결합하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을 형성하는데, 나이를 먹으면 요 DHT가 몸의 신호 체계를 교란해 머리에선 탈모를 유발하고 코와 턱, 눈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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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프리랜서. 글, 그림, 영상, 여행, 전시 작업에 관여합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어쩌다 운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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