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영화 촬영 금지, 탄압받는 거장의 역작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1/25
국경을 넘어 다른 곳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이 선진국 사람들의 흔한 오만이라지만, 그럼에도 비판할 밖에 없는 것이 있다. 법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옥죄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마을에서는 태어난 아이의 탯줄을 자르며 어른들이 그가 장차 혼인하게 될 이의 이름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는 성년이 되면 마침내 탯줄을 자를 때 예고됐던 이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그를 좋아하느냐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전통도 있다. 이를테면 어느 명절날엔 마을 청년들이 모여 서로 발을 씻는 풍습이 있는데, 발을 씻으러 가는 처녀의 옷을 청년이 잡아당기면 그녀는 싫든 좋든 그와 맺어져야 한다.
 
무슨 구닥다리같은 이야기냐고? 누군가는 어처구니없어 할 이러한 일이 지구 한 곳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전통이며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세속적 친미정권이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세이니의 혁명 이후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회귀했다. 폐지됐던 종교경찰이 득세하고 코란에 근거한 온갖 교리가 일상을 파고들어 국민의 삶을 옥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 노 베어스 포스터 ⓒ 엠엔엠인터내셔널

정부 탄압 속 만들어진 영화

2022년엔 히잡을 제대로 안 착용했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게 끌려간 스물둘의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해 수많은 명사가 거리로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 중 많은 수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4명이 실제로 처형당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중동의 강국으로 손꼽히는 이란의 현실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다. 거장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그가 자유를 빼앗긴 신세가 되어 이란에 묶여 있다. 그의 작품활동이 체제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가 출국금지 조치는 물론 20년 간 영화제작 금지 결정까지 내렸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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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3급 항해사.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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