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편지6] 수달과 너구리 만나다
2023/03/22
#수달이 너구리에게
너구리 님 안녕하세요?
이웃지간인데 이 동네 이사와서 인사가 늦었네요. 우리는 조심하느라 밤중에만 주로 다녀요. 그래서 너구리 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네요. 너구리 님들은 주로 저녁 나절에 돌아다니죠? 오늘은 맘 먹고 일찍 나와봤어요. 상의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
이웃지간인데 이 동네 이사와서 인사가 늦었네요. 우리는 조심하느라 밤중에만 주로 다녀요. 그래서 너구리 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네요. 너구리 님들은 주로 저녁 나절에 돌아다니죠? 오늘은 맘 먹고 일찍 나와봤어요. 상의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
예전에 인간들은 이사하면 떡도 돌리고 하던데, 빈손으로 인사해서 미안해요. 나중에 게나 잉어라도 몇 마리 잡아드릴게요. 너구리 님은 다 잘 잡수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영화를 보니 너구리 님은 박카스를 좋아하던데, 그건 편의점에서 파나요?
우리는 이 동네가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원래 우리가 살던 강도 물고기가 많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참 좋았어요.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개발 바람이 불어서 강바닥을 긁고 작은 댐과 산책로를 만들더라고요. (우리 와이프가 어디서 영어를 배워서 “갓 댐” 그러대요.) 할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 중랑천으로 온 거예요. 소식을 듣자 하니 요즘 그렇게 파헤쳐지는 강이 많다고 해서 걱정이네요. 우리야 이곳으로 왔지만 다른 수달들은 어디서 터를 잡고 살아갈지…
이곳 중랑천은 참 살기 좋아 보여요. 새들도 물고기도 바글바글 많네요. 여기까지 포크레인으로 파헤치지 않겠죠? 우리는 더 이상 이사다닐 기력도 없어요. 와이프는 빨리 애들 낳고 키우자고 재촉하고요. 너구리 님은 오랫동안 이 동네 살았으니 잘 아실...
강의 생태를 가꾸고 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에서 일합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숲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