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하려다 미스협찬사 때려치웠습니다.
2023/10/13
담배냄새. 나에게 미스코리아 대회는 저릿한 담배냄새로 남아있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열다섯 명 내외 본선 진출자들은 대회 전까지 주최 측이 준비한 스케줄에 참여해야 했다. 첫날 첫 스케줄은 지방자치단체의 시청을 방문하는 거였다. 지역 축제 홍보의 일환이었다. 매일 아침 8시 전까지 집합 장소에 모여 다같이 작은 버스를 타고 기업과 정부의 각종 행사장으로 가곤 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집에서 입던 옷에 대충 선크림을 바르고 준비장소로 갔다.
그런데 웬걸. 나만 빼고 다들 속눈썹까지 완벽하게 붙인 방송용 풀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대회날도 아니고 사전 행사날에,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속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텐데 다들 연예인인가 싶었다. 분명히 오리엔테이션 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말고 편한 복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말이다. 스폰서, 내정자, 유명 미용실 간 경쟁, 대회기간 동안 천만 원을 쓴다는 루머 등 여러 논란에 공신력이 추락하고 있던 미스코리아 대회는 참가자들에게 대회 전까지 개인 비용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모든 비용은 주최 측이 부담한다면서.
지자체와 협찬사 방문 일정은 형식적인 사업 설명을 주고받을 때 미소 지으며 앉아있다가 커다란 현수막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미스코리아 방문’ 촌스럽고 큼지막한 현수막 뒤에 열다섯 명이 일렬로 서 환하게 웃으면 대포 같은 카메라 몇 대가 눈을 뜨기 힘들게 셔터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첫날 온 정신은 안 그래도 넙데데한 내 얼굴이 생얼로 단체 사진엔 어떻게 나왔으려나에 쏠려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솔자가 카톡 단체방에 올려준 사진 속 내 모습은 눈코입이 흐릿한 츄파춥스였다. 마른 몸에 상대적으로 큰 얼굴이 돋보이는. 사전 행사일정에서 겉모습은 본선에서 진, 선, 미를 가리는 평가요소가 아니었지만 꽃다발 속에서 나도 나뭇잎이 아닌 꽃이 되고 싶었다.
인형처럼 예쁜 독보적인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비슷한 체형과 어중간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시간 정도의 화장과 머리손질을 거치...
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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