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피아노 #20 "피아노 앙상블"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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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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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개념과 양식이 흘러들어 말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돌아보면 묘한 일이 발생한 듯하기도 하다. 앙상블이란 여러 악기가 어우러지는 합주(단)를 이야기하는데, 피아노에는 잘 쓰지 않는, 어색한 느낌이다. (목/금)관악, 현악에 훨씬 자연스럽게 붙어 다니는 말이기는 하니까.

그조차도 요즘엔 덜 쓰이기는 하고, 오히려 앙상블이란 말이 더 많이 들리는 세계는 AI계 같다. 이것은 필자의 종사 도메인과 밀접하니 필자에겐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머신 러닝 모델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대강 말하면, 여러 모델을 합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개별 모델의 약점을 보완해 전체 성능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아무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앙상블'이란 말은 거의 영어화했다시피(즉, 원래는 영어가 아니다) 기억되는데, 언어적 촉이 남다른 분들은 프랑스어에서 왔다는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조금 더 어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ensemble이라는 로마자로 쓰는 이 말은, 라틴어의 insimul에서 왔다고 한다. in은 '안에'라는, 그리고 simul은 '동시, 함께'라는 정도의 의미다. 즉, 여러 요인이나 요소가 어우러지는 조화를 표현하는 어휘라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피아노에는, 이 악기의 (다른 악기와는 잘 안 어울릴 듯한 덩치의) 독주적 위용 때문일지 뭐 때문일지 몰라도, 잘 안 쓰이는 말이다. 예를 들면, 실내악 앙상블, 오케스트라 앙상블, 재즈 앙상블 같은 말들은 써도(이 때 피아노가 악기의 하나로 쓰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피아노 앙상블은 잘 못 들어본 듯하지 않은가? 물론 피아노 연주의 꽃은 독주라고 할 수 있지만, 피아노 역시 커다란 오케스트라와 협연(묘하게도 '합연'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 아마 비슷한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더라도 실제 우리 사회문화를 겪지 못한, 북방계 한국어 구사자들한테서, 또는 배우긴 배웠지만 한국어가 서툰 한자권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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