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알은 다음
2024/10/11
죽은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심었어요
죽은 목숨이었지만 발전이 있어 보였거든요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나는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었죠
대화를 위해 죽은 나무 위에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됐어요
그걸 허수아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겨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다가
그만
허수아비의 몸에 불이 붙어버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마디했어요
이제야 말이 더듬더듬 나온다고
이원하 작가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에 나오는 시 '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입니다.
고선경 시인이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폐허나 죽음의 시간을 지나서야만 더듬더듬 말하기(시 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죽음” 다음에 오는 “발전”이라니, 조금 가혹하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세상 만물이 그렇지 않습니까?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처럼요. 계절의 순환처럼요.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말마따나 심란했던 여름은 죽었고, 발전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듬더듬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한글
오늘의 이야기는 이 대전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한글은 아름답다.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대체불가능합니다. 고유한 맛이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시가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입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시인의 아들은 조태열 현 외교부장관입니다. 조 장관은 영문으로 번역된 아버지 시집에서 <승무>가 빠진 이유를 바로 이 '나빌레라'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20190923 조선일보發 <70년 2代에 걸친 번역… 영어로 울려퍼진 조지훈의 詩>)
"버터플라이(butterfly)라고 번역할 수도 없어 참 난감"했고, "그만큼 한국 정서를 영어로 옮기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직계혈통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셈입니다.
조의연, 이상빈의 책 <K 문학의 탄생>에는 이런 예시도 나옵니다.
'가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