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가부장제 이전의 여성 억압의 역사들 - 주디스 버틀러 <젠더트러블>
근대 가부장제 이전의 여성 억압의 역사들 - 주디스 버틀러 <젠더트러블>
가끔 여성 억압의 역사라는 우연성을 만들어준 상상의 관점을 제시한 ‘가부장제’라 불리는 것 이전의 시대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부장제 이전의 문화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은 가부장제의 자기물화를 폭로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런 가부장제적 기획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물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가부장제’라는 개념이야말로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 놓인 명백한 젠더 불균형을 간과하거나 축소하는, 보편적 개념이 될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상상 속 과거에 기댈 때에는 다소 주의가 요구된다. 남성적 권력의 자기-물화된 주장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여성적 경험의 물화를 발전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엥겔스의 이론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같은 구조주의 인류학에 뿌리를 둔 페미니즘의 입장 전반에는 젠더 위계를 설정한 역사나 문화 속의 계기와 구조들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구조나 실마리가 되는 시기를 따로 분리해 취급하려는 것은 여성들의 종속을 자연질서에 귀속시키거나 보편화하려는 보수반동 이론들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젠더 위계에 대한 이같이 강력한 비판이, 문제가 되는 규범적 이상들을 수반하는 가상의 허구를 이용하고 있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섹스/젠더의 구분을 지지하고 표명하려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에게 전유되었다. 그들의 입장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복종하는 ‘여성’으로 변해버린 자연스러운, 혹은 생물학적인 여자가 있다. 이런 시선에서 볼 때 섹스가 문화적,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섹스’는 법 이전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친족 법칙에 복종해야만, 혹은 복종한 후에라야 의미화되기 시작하는 문화의 ‘원재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로서의 섹스, 혹은 문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