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의 성장 - 김병운 「윤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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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p_ · 이런저런 이야기를 경계없이 떠듭니다
2024/02/08
 전승민 평론가는 자신의 평론 「포르셰를 모는 레즈비언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이에 관하여: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에서 비평이 퀴어의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작업에 몰두해야할 때임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한국 문단에서 퀴어의 인식에 대한 담론은 충분히 쌓인 반면 이들 존재의 양태에 대한 담론은 비교적 부족해 보인다. 이는 독자가 게이, 레즈비언을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포르셰는 모는 레즈비언을,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이를 쉽사리 떠올리기 힘들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퀴어의 인식론에만 머물러있기에 이들이 경제적, 정치적 양태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더욱이 그 인식론은 퀴어라면 부유하진 않을 것이라는, 진보 정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즉 '사회적 약자'라면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에 갇혀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편협한 인식의 틀을 깨고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김병운의 「윤광호」가 바로 이러한 퀴어의 인식에서 존재에 대한 이해로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며 독자 또한 그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비퀴어가 퀴어를 인식하는 대부분의 퀴어 문학과 달리 「윤광호」는 퀴어를 또다른 퀴어가 인식한다.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게이임을 인식하였지만 이를 긍정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며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내기가 꺼려저 퀴어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그러한 ‘나’가 관찰하는 ‘윤광호’는 검은색 시스루 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는 자신이 게이임을 당당히 드러내고 다니는 주체적 인물이다. 즉 「윤광호」는 아직 인식론에만 머물러있는 퀴어가 존재론으로 나아가 실존적인 삶을 사는 퀴어를 인식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와 ‘윤광호’는 ‘게이 라이프스타일 보고서’라는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 게이들의 삶의 방식을 취재해 정리하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며 만나게 된다. '나'는 60대 게이 인터뷰를 맡아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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