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축구의 추억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9/20
쿠웨이트 축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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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 개막은 아직이지만 경기 후 며칠의 휴식이 필수적인 축구 경기의 특성상 축구 예선은 이미 시작됐고 한국이 쿠웨이트를 무려 9대 0으로 이겼다. 한마디로 한국이 가지고 놀았다고 해야겠다. 9대0이란 스코어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헝가리 전에서 푸스카스가 이끄는 마자르 군단이 한국팀에 선사했던 스코어다. 길이길이 운위되는 흑역사의 점수라고나 할까. 그 대패(大敗) 쿠웨이트에게 안긴 것이다.

톱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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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에게 이 스코어는 매우 낯설다. 어디 몰디브도 아니고 브루나이도 아닌 쿠웨이트를 상대로 9대 0이라니.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꽤 열성적인 축구팬이었던 1980년대가 쿠웨이트 축구의 짧은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청소년기의 쿠웨이트는 이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동의 축구 강국이었다. 1980년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한국팀은 사상 처음으로 남북 A매치에서 북한을 꺾는다. 경기 시작 10분을 남기고 두 골을 몰아넣은 대역전극이었기에 대한민국이 조용하지 않았는데 당시 경기가 열린 쿠웨이트 경기장은 가히 한국의 홈구장 같았다. ‘외국인 노동자’로서 중동에 무더기로 나가 있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경기장을 점거하다시피 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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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꺾고 미칠 것같이 환호한 건 좋았는데 그 경기에 너무 힘을 뺀 탓인지 한국은 결승전에서 3대0으로 완패한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당시 개최국 쿠웨이트였다. 위성 중계로 그 경기를 지켜봤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었다. 심판이 야료를 부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맥없이 틀어박히고 헛발질만 한 끝에 3대 0으로 졌다. 쿠웨이트는 그런 강호였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쿠웨이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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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시아 축구에서 중동 축구는 실력보다는 심판의 도움(?)으로 유명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나 쿠웨이트, UAE 등 중동의 석유 부국들과 축구를 할라치면 심판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부터 봤다. 차라리 일본인이면 나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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