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있는 걸 가르치는 학교'라는 환상, 포퓰리즘

남궁민
남궁민 인증된 계정 · 판교와 여의도 사이
2023/02/09
"세상이 복잡해지니 학교도 변해야 한다" 라는 주장이 있다. 아니 주장이 아니라 너무 당연하고 온당해 보이는 얘기다. 이런 대의에 맞춰 교육도 변해왔다. 그 상징이 아마도 학부모라면 들어봤을 '고교학점제'다. 고교도 대학처럼 다양한 과목을 자유롭게 골라 듣게 해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자는 뭐 그런 취지의 제도다.

21세기형 교육을 구현한 학교상은 멋지다. 국영수 같은 '낡은' 과목은 넣어두고 드론 날리기나 인공지능 기업 탐방, 유튜버의 세계 같은 과목을 듣는다. 이게 21세기고 첨단이지. 한 정치인은 이렇게 엄숙하게 얘기했다. "산업혁명 이래 변한 적 없는 학교를 혁신하겠다".


뿌리산업 가르치려다 함께 사라진 마이스터고

그런데 이런 '실용 교육'에 대한 열망은 이번에 처음 실현된 게 아니다. 실업계 고교의 판을 뒤집어 놓은 이명박 정부 시절 마이스터고가 한 사례다. 당장 쓸모 있는 기술을 가르쳐서 누구나 먹고살 수 있게 만든다는 취지였다. 이 무렵 많은 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면서 조형, 주물, 기계공작 등 당시 한국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던 산업 특화를 선언했다.

문제는 그 사이 시대가 변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영원히 잘 나갈 것 같던 제조업은 중국의 공세에 차츰 일자리가 줄었고, 버텨도 영세해졌다. 졸업을 해도 벌이가 약속한 것과 영 다르다. 한국이 선진국에 접어들면서 사회적으로도 '기계밥' 먹는 일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로 변했다. 학부모가 그리고 누구보다 학생들이 가기 싫어한다.

요즘 이 마이스터고들은 몇 년마다 교명을 바꾼다. 서울시내에서만 학교 이름을 바꾸는 곳이 1년에 서너 곳이 넘는다. 이유는 전자마이스터고였던 학교가 콘텐츠마이스터고가 됐다가, 다시 메타버스 마이스터고로 간판을 바꾸는 식이라서다. 학교의 주력 기술을 선언해 놓으면, 그것보다 빠르게 세상이 바뀐다. 애초에 굼뜨고 보수적인 학교란 곳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결과다.


코딩 의무교육 만들었더니 '코딩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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