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내가 완벽주의가 있는 건에 대하여
2022/11/17
나는 텅 빈 페이지를 10분째 쳐다보고 있다. 커피도 마셨고, SNS도 다 둘러봤고, 기사도 봤으며, 음악도 들었고, 이도 닦았다. 더이상은 미룰 수 있는 핑계가 없다. 사실 진짜로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이미 며칠을 미룰 만큼 미뤘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완벽주의에 대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지! 이 글을 쓰기 위해 벌써 9편의 논문을 읽었으며, 2권의 책을 사비로 사서 읽었다. 내가 쓰는 글은 사람들이 마지막 단락까지 읽을 만큼 재미있어야 하며, 돈을 내고 보는 만큼 유익해야 하고, 심리학자로서 쓰는 글인 만큼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런 글을 쓰지 못하면 사람들은 내게 실망할 것이고, 다시는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영영 어떤 기회도 얻지 못하는 실패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글을 못 쓰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완벽주의 기질이 있군요.”라고 얘기해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반응이 있다. “네? 제가요? 저는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을 추구하지도 않는데요?”. 그러나 서론에서 내가 한 이야기들에 공감했다면, 혹은 완벽주의라는 키워드에 끌려 이 글을 클릭했다면.. 유감이다. 당신은 완벽주의 기질이 있을 확률이 높다.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너무 높은 목표 혹은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앞 단락에서 쓴 기준을 살펴보자.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1) 재밌고 2) 유익하고 3)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글일 것. 이것은 이상적인 기준이지만, 비현실적이다. 재미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모두에게 재미있을 수가 있는가? 각자가 필요한 정보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정확한 정보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면 도달할 수 없는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주의자들은 이러한 기준을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을 낼 경우 실패했다고 생각하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그 기준을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경직성이 완벽주의의 또다른 특징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들의 가열찬 노력은 불안과 실패에 대한 공포를 연료로 삼는다. 사람들이 실망하면, 엄청난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탁월하지 않으면 나는 실패한 것이고, 이 실패가 파국적인 결말로 이어질 거라고 상상한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있겠는가? 애당초 도전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일의 시작을 미루거나, 번아웃이 올 때까지 무리하게 일하는 수밖에!
마음과 관계에 대해 그림일기를 그리며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소속: 광운대학교 코칭심리 전공 박사과정
- 저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외
- 경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임상 및 상담 석사
중앙심리부검센터 연구원
저는 분명히 자기지향 완벅주의네요. 직장 동료랑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대충대충이 아니고 대충 제대로 하려고 해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대충대충 사는 법을 몰라서 그것도 또 힘든 지점인 거 같아요. 기대치가 높고 스스로 만족을 잘 못하는.. 서밤님 여기서도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블로그 페북 인스타에 이어 얼룩소에서도 구독 누르고 갑니다ㅡ
좋은 글의 기준을 이미 충분히 넘으신거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고 신해철이 어떤 방송에서 너희는 이미 수 많은 정자라는 형제들의 경쟁에서 이기고 태어났다. 이미 성취했다. 나머지는 덤이다. 이런 소리 하시면서 성공에 목매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으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영상을 유투브에서 본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 글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고 신해철이 어떤 방송에서 너희는 이미 수 많은 정자라는 형제들의 경쟁에서 이기고 태어났다. 이미 성취했다. 나머지는 덤이다. 이런 소리 하시면서 성공에 목매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으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영상을 유투브에서 본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 글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자기지향 완벅주의네요. 직장 동료랑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대충대충이 아니고 대충 제대로 하려고 해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대충대충 사는 법을 몰라서 그것도 또 힘든 지점인 거 같아요. 기대치가 높고 스스로 만족을 잘 못하는.. 서밤님 여기서도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블로그 페북 인스타에 이어 얼룩소에서도 구독 누르고 갑니다ㅡ
좋은 글의 기준을 이미 충분히 넘으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