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5주기를 맞아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7/23
2018년 7월 23일 노회찬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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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밑이었다. 이렇게 한 해가 가는구나 장탄식을 하며 신문을 뒤적이던 중 한 기사에 눈이 못박히고 말았다. 어느 대학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송년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사였다. 차비가 없어서, 정말로 차비가 아까와서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는 형편의 학생이 있었다. 하물며 그 처지에 누구를 돕는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학생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제 코가 석 자’인 주제에 누가 누굴 도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역시 신문에 나올 만한 학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3년간이나 노력해 왔던 것이다. 아주머니들을 도와 학교 당국과 싸움도 하고 협상에도 관여했던 그는 마침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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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는 길어질 대로 길어진 자신의 코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도무지 등록금을 내지 못할 처지임을 깨달은 것이다.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돈 나올 구멍은 없었다. 또 휴학을 해야 하나 한숨을 쉬던 상황.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나섰다. 그 박봉을 쪼개고 파지 팔아 모은 돈을 보태어 1백만원을 마련한 아주머니들은 막간을 이용해 차린 송년회 자리에 문제의 학생을 초대한다. “이 돈 보태 등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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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은 학생은 제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인다, 박수를 치는 청소 노동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은 학생이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학생에게 아주머니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우리가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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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역사의 퍼즐을 보게 된다. 자신의 어려움만큼이나 남의 어려움을 살필 줄 알았던 한 아름다운 청년과 자신들을 도왔던 이의 어려움을 저버릴 수 없었던 아주머니들이 어우러지면서 작은 역사의 조각맞춤. 작지만 큰 역사, 서로의 인생에 지워지지도 않고 잊혀지지도 않는 연대의 아로새김의 역사 말이...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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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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