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를 빌리다

박희인
박희인 · Ludology
2023/12/28
남성 혐오를 고발하는 글은 인지되지 못한 폭력을 밝히면서 공익성을 주장한다. 이런 글은 ‘구조화’된 멸시와 혐오를 폭로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판하는 방식을 빌리고 목적어만 바꾼 고발은 정체성에 따라 비판 의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취지 아래에서 양비론을 형성한다. 여성 혐오가 있다면, 남성 혐오도 있다고 말이다.

아무리 점잖은 글로 남성 혐오 고발을 포장해도, 우스운 부분이 있다.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를 스토킹하다가 불법 촬영 등의 혐의로 고소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강요)으로 기소되어 9년 징역을 구형된 남성 범인이, 아직 남아있던 공사 직원의 신분을 이용하여 스토킹 피해자의 신원을 조회하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한편, 어느 게임 캐릭터의 손 모양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남성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표현과 비슷했는데, 알고 보니 하청업자의 어느 직원이 ‘은근슬쩍 스리슬쩍’ 타 작품에도 이러한 묘사를 끼워 넣었다고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거론된 두 사건을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의 사례로 대치시켜 놓는다면, 남성 성기 크기가 여성 인생만큼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두 사건은 별개 이야기인데 이렇게 억지로 비교하면서 양비론을 펼칠 수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대놓고 두 사례를 등치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은 안 보일 테니까. 질문을 상상해 보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N번방 성 착취 등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례들이 있었고, Girls can do anything의 의미 변질, 그로 인해 문제시되었던 클로저스 성우 발언이 남성 혐오 사례로 기억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질문이 형편없는 비교를 하고 있으며, 편향되어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공론화된 이야기의 낯짝만 놓고 본다면,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의 모습은 딱 저런 모습이었다.

남성 혐오 고발은 발견에서 시작한다. 문제가 있다고 주장되는 발언을 찾아 노출한다. 그리고 이렇게 심각한 사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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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연구합니다. 뉴 미디어 이론에서부터 형식적 게임 표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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