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연대의 폐교, 김지회의 동굴 - 빨치산의 흔적을 찾아서 2
2023/05/30
14연대의 폐교, 김지회의 동굴 – 빨치산의 흔적을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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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부대 편제를 보자면 유독 기피되는 숫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숫자 ‘4’다. 4사단, 14사단, 24사단, 34사단 등등이 없고, 4곱하기 4의 16사단도 없다. 그 예하의 연대나 대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빌딩이나 병원, 또는 아파트 4층 자체가 없거나 F로 표기하는 경우가 흔했으니 군대도 그런가보다 싶지만 한국군에는 또 다른 기구한 사연이 존재한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14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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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연대는 1948년 5월 초 4연대에서 분리 창설됐다. 4연대는 좌익 사상을 지닌 이들이 많았고 특히 경찰과 사이가 좋지 않아 살벌한 총격전 끝에 사상자까지 낸 적이 있었는데 14연대 또한 다르지 않았다. 1948년 9월 이 14연대원들은 구례에서 경찰과 충돌한다. 구례경찰서 수사과장이 거나하게 취해서 지나가다가 이발소 아저씨에게 시비를 건다. “왜 앉아서 인사를 안허냐. 느자구없는 넘아.” 그리고는 두들겨 팬다. 애가 울어도 “순사 온다.”고 했던 일제 경찰의 근성을 전혀 벗지 못한 만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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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이발소 주인에게 가오를 세우려던 수사과장은 별안간 끼어든 군인들에게 격노했다. 그는 부하들을 풀어 14연대 장병들을 체포하여 실컷 때려 준 뒤 유치장에 가둬 버린다. 14연대 헌병대가 개입해서 장병들을 인수해 오긴 했지만 당시 군인들 가슴에 어떤 응어리가 졌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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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4연대에 제주도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제주도에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는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좌익세가 유력했고 철모 끈 매는 모양으로 서로를 구분할 정도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던 14연대 내 좌익들은 제주도 출동 반대와 미군 철퇴를 내세우며 봉기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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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