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조폭 습격사건을 보며
2023/11/17
어려서 ‘삥’을 뜯겨 본 적은 거의 없는데, 특히나 고등학교 때는 없었다. 성격이 원체 유순한데다 겁도 많고,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순둥이 타입이라 삥 뜯는 넘들 보기에는 꽤 괜찮은 사냥감이었을 텐데 그런 피해를 보지 않았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삥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학교가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아이들이 집결한 하나고등학교 부류냐, 그건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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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학교에서 놀던 부류들이 조폭으로부터 ‘관리’를 받고 있었고, 풍족한 용돈을 받았기에 ‘양민’을 착취하지 않았고, ‘애들 코묻은 돈’에 눈독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누가 삥을 뜯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 학교의 양대 ‘조직’에서 나와서 “어느 놈이고?”를 물어 알아낸 후 “양아치같은 색기”를 준엄하게 응징하고 치도곤을 매겼다고 전한다. 내가 보기엔 이 양아치나 저 조직 애들이나 비슷한 부류였는데 ‘조직의 일원’들은 ‘양아치’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고, 욕으로 썼고, 자신들과 차별화된 찌질한 놈들로 치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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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조폭 전담 형사 얘기로 경찰서에 잡혀와서 머리 숙이고 조서 쓰던 놈들도 ‘양아치’라는 욕을 먹으면 갑자기 눈 까뒤집고 항의한다고 했으니 그건 머리 굵고 나이 지긋한 ‘건달’, 즉 깡패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그렇게 조폭들은 ‘양아치’에 민감할까? 나는 민감함은 차이가 크다기보다는 일종의 동족혐오라고 생각한다. 그저 덩치 큰 양아치가 조폭일 뿐이고, 조직적으로, 제도를 이용하고, 권력을 활용하여 통 큰 양아치짓을 벌이는 게 조폭일 따름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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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박민 사장 KBS 습격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깡패들이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업소 하나 박살내는 광경이 실감나게 떠오른다. “오늘부터 이 구역은 내가 관리한다.”로 시작해서 일하는 사람 두들겨...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