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 엄마의 정치적 만두

오혜민
오혜민 인증된 계정 · 여성학자, 한예종의 페미니스트 선생
2023/03/03
115주년을 앞두고, 세계여성의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첫 해인 2019년 3월 8일 베를린 집회 풍경을 떠올렸다
2012년 12월, 내 만두와 엄마 만두

엄마와 전날의 선거 결과를 얘기하면서 만두를 만들었다. 이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고작 할 수 있는 게 만두라니.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엄마의 거듭된 권유에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식탁에 앉았다. 

엄마와 나는 같은 방향을 봤지만, 전날의 일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독재를 겪어봤고, 나는 제한보다는 자유를 느끼면서 자랐다. 엄마는 오히려 차분했고, 나는 화를 많이 냈다. 엄마는 삶을 지키는 방법을 익히면서 살아 온 사람이었고, 나는 삶을 바꾸는 방법을 자꾸 찾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변화에 더 익숙하다는 듯 변화 속에서도 삶을 유지하는 방법을 차분하게 얘기했고, 나는 나에게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그 마음에 압도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식의 질문을 중얼거렸고, 엄마는 대답 대신 만두피에 속을 더 많이 넣으라고 했다. 엄마는 "세상이 어떻든 지금 내 삶에 집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고, 나는 "동그랗게 만든 만두가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먹어도 잘 안 터져서 먹기가 좋다"고 했다.
차분하게 만든 엄마 만두와 툴툴거리며 만든 내 만두

이상한 동문서답을 이어지며,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이 흘러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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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입장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연구자, 존중의 공간을 만드는 선생을 목표로 반 페미니즘 백래시, 여성 청년, 교차성, 이주, 페다고지를 탐색한다. 도서 <벨 훅스 같이 읽기>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 <Unbekannte Vielf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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