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실]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2023/09/06
„Wir riefen Arbeitskräfte, und es kamen Menschen“ (Max Frisch, 1965)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독일 분단 이후 서독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각국의 노동자들을 불렀다. 손님노동자 Gastarbeiter라는 이름으로. 꼭 필요하지만 쉽게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웠다. 그리고 서독의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손쉽게 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려던 그 시기 이 문구가 회자되었다.
이주 노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 문구가, 방학내 문득 문득 자꾸 반복되어 떠오르던 이 문구가 개강 날 또다시 떠올랐다.
2016년 예술계 내 성희롱 성폭력 공론화 이후 고민을 거쳐 만들어진 내 담당 교양필수 교과목. 시행 두 번째 학기를 앞두고 이 자리에 지원한 나는 내 전공을 살려 일할 곳을 찾아왔고, 지지고 볶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도 모르게 이 일을 일을 뛰어넘는 사명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여름의 궂은 소식과 함께 4년을 지배했던 '잘하자'는 그 마음도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을까. 나의 자리는 정말 안전했을까. 내가 더 애쓰면 점점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사실은 잘못된 게 아닐까.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내가 무엇을 움직일 수 있는거지?
잘 하고 싶은 마음만 갖고 있던 나의 일을 조금 거리 둔 채 재정립해 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 일에 대한 애정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 사이를 오가며 고단했고 아직 고단한 여름을 보냈다.
마지막 영화작업의 임금체불 사건을 겪은 뒤 예술학교 선생이면서도 도무지 갈 수 없던 영화관에 다시 가기 시작했다. 영상원 학생들을 만나기 전 꼭 봐야할 것 같은 작품이 많았다. 평소라면 망설이다 가지 않았을 각종 워크샵도 부지런히 다녔고, 연구에 쏟아야 할 시간을 빼서 자꾸 어딘가에 고개를 디밀었다. 그 과정에서 이곳에서 이미 만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는 걸, 첫 학기때 신입생이었던 학생들이 이제 졸업반이라는 사실...
각 입장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연구자, 존중의 공간을 만드는 선생을 목표로 반 페미니즘 백래시, 여성 청년, 교차성, 이주, 페다고지를 탐색한다.
도서 <벨 훅스 같이 읽기>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 <Unbekannte Vielfalt>